한능검/한능검 41회

한능검 41회 고급_26~30_정답 및 해설

bluecolor 2021. 2. 3.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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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⑤
조선 시대에 에도 막부와 교류를 위해 파견된 사절단은 조선 통신사이다. 조선 통신사 관련 기록물은 2017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정답
⑤ 비변사는 19세기 초까지 파견되어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는 등 문화 교류의 역할을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침략을 받은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에 도 막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 선 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쓰시마섬 도주 를 통하여 조선에 국교를 재개하자고 요청해 왔다. 조선은 막부의 사정을 알아보고 전쟁 때 잡혀간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하여 유정 (사명대사)을 파견하여 일본과 강화하고 조 선인 포로 7000여 명을 데려왔다(1607). 곧 이어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어 동래부의 부산 포에 다시 왜관을 설치하고, 제한된 범위 내 에서 교섭을 허용하였다(1609). 한편, 일본은 조선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 고, 에도 막부의 쇼군(將軍)이 바뀔 때마다 그 권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조선 에 사절의 파견을 요청해 왔다. 이에 조선에 서는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사절을 파견하였다. 통 신사 일행은 적을 때에는 300여 명, 많을 때 에는 400~500 명이나 되었고, 일본에서는 국빈으로 예우하였다. 일본은 이들을 통하여 조선의 선진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자 하였 다. 따라서, 통신사는 외교 사절로서뿐만 아 니라, 조선의 선진 문화를 일본에 전파하는 역할도 하였다.

오답
① 조선 통신사는 비정기적으로 파견되었다.
② 연행사, ③ 청에 파견된 사절단, ④ 여진족 관련 설명이다. ①, ③ 조선은 명·청으로 매년 정기적·부정기 적으로 사절을 보냈다. 특히 명에는 정기적 으로는 하정사·성절사·천추사·동지사를, 부정 기적으로는 사은사·주청사·진하사·진주사 등 을 사절로 파견하였다. ② 대청 사신(연행사)의 기행일기를 연행록 이라 하고 홍대용, 박지원의 작품이 유명하 다. 좁은 의미의 연행록은 1791년 문인 김정 중이 사행 일원으로 따라가 적은 연행록이 유명하다. ④ 조선 초기 세종 대에 여진 사절단을 대접 하는 곳으로 서울 동대문 인근에 북평관(야 인관)을 설치하여 조공 무역을 허락하였다 (1438)


27 ⑤
관리 감찰 등을 수행하였으며, 수장이 대사헌이었던 기구는 조선 시대 사헌부이다.

정답
⑤ 사헌부는 5품 이하 관리의 임명 과정에서 반대 여부를 행사할 수 있는 서경권을 행사하였다.

오답
① 소격서, ② 승정원, ③ 장용영, ④ 홍문관에 대한 설명이다.


28 ②
기해예송에서 3년설, 갑인예송에서 1년설을 주장하였으며 유교 경전의 재해석을 시도하여 사문난적이라 비판받았던 인물은 윤휴이다.
정답
② 윤휴는 숙종 때 청의 정세 변화를 계기로 북벌을 주장하였다.

오답
① 김종직, ③ 유형원, ④ 박지원, ⑤ 김육에 대한 설명이다.


29 ⑤
지나친 세금 수탈로 평안도민들의 불만이 많아 발생하였으며, 홍경래 등이 주도한 ‘거사’는 조선 후기에 발생한 홍경래의 난이다.

정답
⑤ 홍경래의 난 때 반란군은 선천, 정주 등 청천강 이북의 여러 지역을 점령하였다.

오답
①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② 임술 농민 봉기, ③ 이괄의 난, ④ 동학 농민 운동에 대한 설명이다.


30 ⑤
청나라 연경을 왕래하며 상인들이 물건 수입을 하던 시기는 조선 후기이다.

정답
⑤ 과전법은 조선 전기에 실시된 제도이다.

오답
①, ②, ③, ④ 모두 조선 후기에 볼 수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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