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 서울의 문화유산(선농단)
정답> ⑤
사직단과 종묘, 문묘, 동관왕묘, 선농단이 차례로 제시되어 있다. 국왕이 신농, 후직에게 풍년을 기원하던 곳은 선농단이다. 조선 태조 때부터 설치되었다.
오답 해설>
① 역대 국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곳은 (사직단이 아니라) 종묘 이다. 사직단은 나라의 신과 곡식을 맡은 신에게 제사를 지낸 제 단이다. ② 촉의 장수인 관우를 제사지내는 사당은 (종묘가 아니라) 동관 왕묘[동묘]이다. ③ 흥선 대원군이 집권한 시기에 혁파된 곳은 47개소를 제외한 전국의 서원과 만동묘이다(각 1871/1865). 문묘(文廟)는 유교의 성인인 공자를 모시는 사당[묘우(廟宇)]이다. 중앙에는 성균관, 지 방에는 각 향교에 설치하였다. ④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 곳은 문묘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앙의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에 설치되었 다.
27 – 일본에 대한 조선의 정책
정답> ④
'이 나라가 조선의 인삼을 수입하기 위해 1710년에 발행한 은화' 가 나와 있다. 이어 '당시 조선의 인삼은 불로장생의 명약으로 알 려져 인기가 많아 주로 부산의 초량 왜관에서 이루어진 인삼 교 역을 통해 많은 양의 은이 조선으로 유입되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자료에서 말하는 '이 나라'는 일본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은 많은 양의 은을 생산하였다. 조선은 광해군 원년인 1609년에 일본과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무 역을 재개하였다.
오답 해설>
① 광군이 설치된 것은 고려 정종 2년(947)으로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② 학문 교류를 위한 (충선왕이 퇴임 후 원의 연경에) 만권당을 설립한 것은 1314년의 일이다(충숙왕 원년). ③ 하정사, 성절사, 천추사 등의 사신을 파견한 대상은 명이다(명 으로 보내는 사신). ⑤ 사절 왕래를 위해 한성에 북평관을 개설한 것은 조선 세종 대 의 일이다(1438, 세종 20). 원래 야인관이라 부르던 것을 북평관 으로 고쳤다.
28 – 남인
정답> ③
'홍문관에서 아뢰기를, 윤국형은 우성전과 유성룡의 심복이며 또한 이성중과 한 집안 사람이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유 성룡이 다시 재상이 되자 윤국형 등이 선비들을 구별하여 자기 들에게 붙은 자를 (가)라 하고, 뜻을 달리하는 자를 북인이라 하여 결국 당쟁의 실마리를 크게 열어 놓았습니다'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자료의 '(가) 붕당'은 남인임을 짐 작할 수 있다. 남인은 이언적과 이황의 제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옳은 설명이 다.
오답 해설>
① 광해군 시기에 국정을 이끈 붕당은 북인이다. ② 숙종 6년인 1680년에 일어난 경신환국으로 정권을 장악한 붕 당은 서인이다. ④ 현종 즉위년(1659)에 일어난 기해예송에서 자의 대비의 기년 복[1년설]을 주장한 붕당은 (남인이 아니라) 서인이다. 남인은 참 최복[3년설]을 주장하였다. 참고로 9개월 동안 입는 복제는 '대공 복'이라 한다. ⑤ 정여립 모반 사건을 내세워 기축옥사를 주도한 붕당은 서인이 다(1589).
29 – 동학
정답> ②
'경상도 일대를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하고 있던 (가)의 교주 최재 우가 23명의 제자들과 함께 경주에서 체포되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체포 후 대구의 감영으로 이송되어 현재 문초가 진행 되고 있으며, 혹세무민의 죄가 적용되어 효수에 처해질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자료의 (가)는 철 종 11년인 1860년에 동학을 창시한 최재우(1824~1864)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동학은 마음속에 한울님을 모시는 시천주를 강조하였다. 동학은 이후 1905년 제3대 교주 손병희에 의해 천도교로 개칭되었다.
오답 해설>
① 배재 학당을 세워 신학문 보급에 기여한 종교는 기독교이다 (1885.8). ③ 일제의 통제에 맞서 사찰령 폐지 운동을 펼친 종교는 불교이 다(조선 불교 유신회). 사찰령이 공포된 것은 1911년 6월의 일이 다. ④ 간척 사업을 추진하고 새생활 운동을 전개한 종교는 원불교이 다(1910년대 말과 1920년대 전반). ⑤ 제사와 신주를 모시는 문제로 정부의 탄압을 받은 종교는 천 주교이다.
30 – 반계 유형원
정답> ⑤
'이곳은 (가)가 낙향하여 학문 연구에 전념했던 전라북도 부안군 의 반계 서당이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그는 이곳에서 제 자들을 양성하며 반계수록을 저술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 를 통해 제시된 자료의 (가)는 반계 유형원(1622~1673)임을 알 수 있다. 유형원은 대표적인 중농학파(경세치용학파)로, 자영농 유성을 위 해 신분에 따른 토지의 차등 분배를 주장하였다.
오답 해설>
①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으로 활동한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서이수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서얼 출신이다. ② 동국지리지를 저술하여 삼한의 위치를 고증한 인물은 구암 한 백겸(1552~1615)이다. ③ 지전설을 주장하여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비판한 인물은 담헌 홍대용(1731~1783)이다. ④ 연행사를 따라 청에 다녀온 후 열하일기를 집필한 인물은 연 암 박지원(1737~180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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