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 원 간섭기의 사실
정답> ②
'흔도· 홍다구·김방경이 일본의 세계촌 대명포에 이르러 통사 김 저로 하여금 격문으로 이들을 회유하게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여러 군사가 일기도(一岐島)로 향할 때 수군 130명 과 뱃사공 36명이 풍랑을 만나 행방을 잃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흔도, 홍다구, 김방경이 일본으로 원정한 내용을 담고 있 는 바 이를 통해 제시된 자료는 원 간섭기에 단행된 여몽 연합 군의 일본 원정(1차는 원종 15년인 1274년에, 2차는 충렬왕 7 년인 1281년에 행해짐)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원 간섭기에 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이 확산되었다.
오답 해설>
① 왕조 교체를 예언하는 정감록이 유포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다. ③ 교정도감이 국정을 총괄하는 기구로 부상한 것은 최씨 무신 정권기에서의 일이다(희종 5년인 1209년에 최충헌이 설치). ④ 이자겸(?~1126)이 왕실의 외척이 되어 권력을 독점한 것은 12세기 초의 일이다 ⑤ 김사미와 효심이 가혹한 수탈에 저항하여 봉기한 것은 고려 명종 23년인 1193년의 일이다.
17 – 충북 청주의 역사적 사실
정답> ③
'정북동 토성', '상당산성' '흥덕사지', '용두사지 철당간', '청남대' 가 차례로 제시되어 있다. 모두 충북 청주에 있는 문화유산이 다. 여기서 '당간(幢竿)'이란 한자뜻 그대로 커다란 깃발[당 (幢), 불화를 그린 기]을 달아 세우는 장대를 가리킨다. 즉 사 찰[절]에서 불화를 그린 기를 달아 세우는 데 사용한 도구이다. 찰간, 장간, 정간, 기간, 치간, 번간, 범장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는데, 나무나 돌, 구리·쇠 등으로 만들었다. '용두사지 철당 간'은 고려 광종 13년(962)에 세워졌으며, 정식 명칭은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이다. 금속 활자로 직지심체요절이 간행된 곳은 충북 청주의 흥덕사 이다(1377, 우왕 3).
오답 해설>
① 유형원(1622~1673)이 반계수록을 저술한 곳은 전북 부안이 다(1659~1664 집필 추정). 구체적으로는 전라북도 부안군 보 안면 우반동이다. ② 안승을 왕으로 하는 보덕국이 세워진 곳은 전북 익산[금마 저]이다(674). ④ 백제와 신라 사이에 황산벌 전투가 벌어진 곳은 충남 논산 이다(660). ⑤ 전태일(1948~1970)이 근로 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곳은 서울이다(1970). 구체적으로는 서울 중구(동대문과 동대 문역사문화박물관(구 서울운동장) 사이 청계천 변 가까이에 형 성된 의류전문 도매상가인 이른바 '평화시장'에서였다
18 – 고려 시대의 사회 모습
정답> ⑤
'왕이 명하기를, 개경 내의 백성들이 역질에 걸렸으니 마땅히 구제도감을 설치하여 이들을 치료하고, 또한 시신과 유골은 거 두어 묻어서 비바람에 드러나지 않게 할 것'이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관리들을 나누어 보내 동북도와 서남도의 굶주린 백성을 진휼하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여기서 제시된 '구제도감 '은 고려 시대에 병자의 치료와 빈민 구제를 목적으로 설치된 기관이다. 상설 기관은 아니고 필요에 따라 임시로 설치되었는 데, 제시된 자료와 같이 고려 예종 4년(1109) 5월 개경에 전염 병이 크게 유행하여 사망자가 다수 발생하고 시체가 거리에 방 치되는 사태로 번지자 구제도감을 설치한 것을 들 수 있다. 예 종 원년(1106)의 동·서 제위도감, 충목왕 4년(1348)의 진제도 감, 공민왕 3년(1354)의 진제색도 이와 유사한 기관이다. 기금을 모아 그 이자로 빈민을 도와주는 제위보가 운영된 것도 고려 시대의 일이다(963, 광종 14).
오답 해설>
① 을파소의 건의로 진대법이 실시된 나라는 고구려이다(194, 고국천왕 16). ② 기근에 대비하기 위해 구황촬요가 발간된 것은 조선 시대의 일이다(1554, 명종 9). ③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소개한 농사직설이 편찬된 것도 조선 시대의 일이다(1429, 세종 11). ④ 국산 약재와 치료 방법을 정리한 향약집성방이 간행된 것도 조선 시대의 일이다(1433, 세종 15).
19 – 조선 세종 대의 사실
정답> ⑤
'(제시된) 그림은 왕의 명을 받은 최윤덕 장군 부대가 올라산성 에서 여진족을 정벌하는 장면'이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 그 결과 조선은 압록강 유역을 개척하고 여언·자성·무창·우예 등 4군을 설치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처럼 4군이 개척 된 것은 조선 세종 15년인 1433년의 일이다. 다른 말로 이를 이른바 '파저강 토벌'이라고도 부른다. '이만주'는 여진족 족장의 이름이다. (일본과) 제한된 범위의 무역을 허용한 계해약조가 체결된 것 은 세종 25년인 1443년의 일이다. 세견선은 50척으로, 세사미 두는 200석, 삼포에 머무르는 자의 체류 기간은 20일로 하는 것 등을 규정하였다.
오답 해설>
① 어영청을 중심으로 북벌이 추진된 것은 효종 대(재위 1649-1659)의 일이다. 어영청이 설치된 것은 인조 2년인 1624년이다. ② 국왕의 친위 부대인 장용영이 설치된 것은 정조 9년인 1785 년의 일이다. ③ 강홍립 부대가 사르후 전투에 참전한 것은 광해군 11년인 1619년 3월의 일이다. ④ 에도 막부의 요청에 따라 통신사가 파견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전반기의 일이다. 선조와 광해군 대는 일시적으로 '회답 겸쇄환사'라는 칭호를 쓰다가 인조 14년(1636)에 이르러 통신 사라는 칭호를 다시 사용하였다
20 – 홍문관
정답> ②
'조선 시대 옥당, 옥서로 불렸던 (가)'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가)은 집현전의 기능을 이었으며, 직제에는 영사, 대제 학, 부제학, 응교, 교리 등이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 해 제시된 자료는 성종 9년인 1478년에 설치된 홍문관임을 알 수 있다. 제시된 옥당선생안은 조선 시대 홍문관직을 역임하였 던 사람들의 인명부이다. 홍문관은 사헌부, 사간원과 함께 3사로 불렸다.
오답 해설>
①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한 기구는 한성부이다. ③ (정조 대) 검서관에 서얼 출신 학자들이 기용된 기구는 규 장각이다 ④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국정 전반을 총괄한 기구는 비변사이 다. ⑤ 국왕 직속 사법 기구로 반역죄, 강상죄 등을 처결한 기구는 의금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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