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한능검43회

한능검 43회 심화_26~30_정답 및 해설

bluecolor 2021. 2. 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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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②
효종 사후 인조의 계비(효종의 계모)인 자의 대비의 복상 기간을 두고 벌어진 논쟁은 (가) 예송 논쟁이다.

정답
② 인조 반정 이후 현종 때까지는 서인이 우세 한 가운데 남인과 연합하여 공존하는 구도가 유지된 채 붕당 정치가 전개되었다. 그러나 현종(1659~1674) 때에 효종의 왕위 계승에 대한 정통성과 관련하여 두 차례의 예송이 발생하면서 서인과 남인 사이에 대립이 격화 되었다. 예송은 차남으로 왕위에 오른 효종의 정통성 과 관련하여 1659년 효종의 사망 시(기해 예 송)와 1674년 효종 비의 사망 시(갑인 예송) 에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다. 이 때 인조의 계비 자의 대비의 복제가 쟁점이 되었다. 서인(송시열, 송준길)은 효종이 적장자가 아 님을 들어 왕과 사대부에게 동일한 예가 적 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1년설(기해)과 9 개월(갑인)설을 주장하였고, 남인(허목, 허적, 윤휴, 윤선도)은 왕에게는 일반 사대부와 다 른 예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3년설 (기해)과 1년설(갑인)을 각각 주장하여 대립 하였다. 기해 예송에서는 서인이 승리하였지만, 갑인 예송에서는 남인이 승리하였다. 

오답
① 성종 대 이후 중앙으로 진출한 사림 세력 의 성장에 따라 훈구 세력과의 갈등 속에서 연산군 때의 무오사화(1498), 갑자사화 (1504)와 중종 때의 기묘사화(1519), 명종 대의 을사사화(1545) 등이 발생하여 사림 세 력은 큰 타격을 받았다.

③ 북인이 집권하던 시기는 광해군 (1608~1623) 때이다.

④ 명종 때에 왕위 계승을 놓고 외척인 소윤 (윤원형)과 대윤(윤임)간의 권력 싸움에 사림 이 연루되는 을사사화(1545)가 일어나 큰 희 생을 당하였다.

⑤ 선조 때에 기축옥사(1589, 정여립 모반 사건 관련 동인에 대한 옥사)의 주역 서인 정철(세자 건저 문제로 몰락)의 처벌을 놓고 서 1591년에 강경론인 북인(조식 계열)과 온 건론인 남인(이황 계열)으로 분화되었다.


27  ②
청계천 준설 공사를 시행하고, 신문고를 다시 설치한 왕은 조선 후기 영조이다.

정답
②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일본과 무역을 재개한 것은 광해군이다.


28 ①
『열하일기』를 저술한 인물은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이다.
정답
① 박지원은 소설 「양반전」에서 양반의 위선과 무능을 풍자하였다.
오답
② 박제가, ③ 이익, ④ 유수원, ⑤ 박세당에 대한 설명이다.

29  ④
소수의 외척 가문이 비변사의 요직을 독점하여 권력을 장악한 시기는 세도 정치 시기(순조, 헌종, 철종)이다.

정답
④ 조선통보는 조선 전기 세종 때와 조선 후기 인조 때 주조된 화폐이다.


30  ③
옥순봉도, 자화상 등의 작품을 남긴 인물은 단원 김홍도이다.

정답
③ 김홍도의 풍속화 <타작>이다.

오답
① 김득신의 야묘도추, ② 신사임당의 초충도 중 수박과 들쥐, ④ 정선의 인왕제색도, ⑤ 김정희의 세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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