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청동기 시대의 생활 모습
정답> ②
'금속이 우리의 삶으로, (가) 시대로의 여행'이라는 제목하에 '우 리 박물관에서는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한 (가) 시대 특별전을 마 련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비파형 동검, 거푸집, 민무 늬 토기 등 당시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을 준비하였으니 많은 관람 바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가) 시대'는 청동기 시대임을 알 수 있다. 청동기 시대에 지배층의 무덤으로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오답 해설> ① 주로 동굴이나 막집에서 거주한 것은 구석기 시대의 일이다. ③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여 식량을 생산한 것은 신석기 시대의 일이다. ④ 쟁기, 쇠스랑 등의 철제 농기구를 사용한 것은 초기 철기 시 대의 일이다. ⑤ 대표적인 도구로 주먹도끼, 찍개 등을 제작한 것은 구석기 시 대의 일이다.
02 – 고조선
정답> ⑤
'위만이 망명하여 호복을 하고 동쪽의 패수를 건너 준왕에게 투 항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위만은 서쪽 변경에 거주하 도록 해주면, 중국의 망명자를 거두어 (가)의 번병(藩屛)*이 되겠 다고 준왕을 설득하였고 준왕은 그를 믿고 총애하여 박사로 삼고 백 리의 땅을 봉해 주어 서쪽 변경을 지키게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가)는 고조선임을 알 수 있다. 참 고로 위만 조선이 성립한 것은 기원전 194년의 일이다. * 번병(藩屛) : 변경의 울타리 고조선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범금 8조를 두었다. 오답 해설> ① 국가 중대사를 정사암에서 논의한 나라는 백제이다. 정암사는 사비(지금의 부여) 근처의 호암사(虎巖寺)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② 마립간이라는 왕의 칭호를 사용한 나라는 신라이다. 신라의 제17대 내물 때(재위 356-402)부터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하 였다[21대 소지 마립간 때(재위 479-500)까지 사용]. ③ 여러 가(加)들이 다스리는 사출도가 있었던 나라는 초기 국가, 부여이다. ④ 빈민을 구제하기 위해 진대법을 시행한 나라는 고구려이다 (194, 고국천왕 16).
03 – 삼한
정답> ③
맨왼쪽 말풍선에 '신지, 읍차 등의 지배자가 있었던 나라에 대해 발표해 보자'는 말이 나와 있다. 가운데 말풍선에는 '벼농사가 발 달하였고, 씨뿌리기가 끝난 5월과 추수를 마친 10월에 제천 행사 를 열었다'는 답변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자료는 '삼한' 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삼한에는 제사장인 천군과 신성 지역인 소도가 있었다. 오답 해설> ① 혼인 풍습으로 민며느리제가 있었던 나라는 초기 국가, 옥저 이다. ② 대가들이 사자, 조의, 선인을 거느렸던 나라는 초기 국가, 고 구려이다. ④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는 12배로 갚게 한 나라는 초기 국가, 부여와 고구려이다(1책 12법). ⑤ 단궁, 과하마, 반어피 등이 특산물로 유명하였던 나라는 초기 국가, 동예이다.
04 – 충남 부여
정답> ②
'문화유산 답사 안내'라는 제목하에 '우리 지역의 역사 유적이 유 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지 5년이 된 바 이를 기념하여 답사 를 준비하였으니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답사 경로로 '출발 → 부소산성 → 관북리 유적 → 정림사 지 → 나성 → 능산리 고분군 → 도착'이 제시되어 있다. 이를 통 해 제시된 '지역'은 충남 부여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부소산성 과 나성은 사비 시대 성곽이며, 관북리 유적은 궁궐터이다. 백제 성왕이 재위 16년인 538년에 새롭게 수도를 정한 지역이 바로 사비, 즉 지금의 충남 부여이다. 이로써 웅진(공주) 시대가 막을 내리고 사비 시대가 시작되었다. 오답 해설> ① 장용영의 외영이 설치된 곳은 경기도 수원이다(1793, 정조 17). ③ 배중손(?~1271)이 삼별초를 지휘하였던 근거지는 전남 진도이 다. ④ 한성근 부대가 서양 세력에 맞서 항전한 장소는 경기도 김포 의 문수산성이다(병인양요, 1866). ⑤ 남북한 경제 협력 사업으로 설치된 공단의 위치는 개성[개경] 이다(개성 공단).
05 – 신라 법흥왕의 업적
정답> ②
왼쪽 말풍선에 '금관국의 김구해가 세 아들과 함께 나라의 보물 을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고 한다'는 말이 나와 있다. 이어 오른 쪽 말풍선에는 '나도 들었다며, 우리 왕께서 그들을 예로써 대접 하여 높은 벼슬을 주고, 그가 다스리던 금관국을 식읍으로 삼게 하였다'는 말이 나와 있다. 김해의 금관가야가 신라에 항복한 것 은 신라 법흥왕 19년인 532년의 일이다. 법흥왕은 재위 23년인 536년에 건원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제 정하였다. 오답 해설> ① 관료전을 지급한 것은 (통일) 신라 신문왕 7년인 687년의 일 이고, 녹읍을 폐지한 것은 신문왕 9년인 689년의 일이다. ③ 지방에 22담로를 두어 왕족을 파견한 것은 백제 무령왕 대(재 위 501-523)의 일이다. ④ 독서삼품과를 시행하여 인재를 등용한 것은 (통일) 신라 원성 왕 4년인 788년의 일이다. ⑤ 자장(590~658)의 건의로 황룡사 구층 목탑을 건립한 것은 신 라 선덕 여왕 12년인 643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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