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한능검49회

한능검 49회 심화 11~15_해설 및 정답

bluecolor 2021. 1. 2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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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고려 태조의 정책

정답> ①

왼쪽 말풍선에 '김부를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하신 의도는 무엇 인지'를 묻는 질문이 나와 있다. 오른쪽 말풍선에는 '투항한 김부 의 공을 치하하고, 부호장 이하의 관직 등에 대한 일을 맡게 하 여 지방 세력을 견제하고자 한 것이다'는 답변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가상 인터뷰의 왕은 고려 태조 왕건(재위 918-943) 이다. 여기서 '김부'는 신라의 제56대 왕이자 마지막 왕인 경순왕 (재위 927-935)이다. 고려 태조 왕건은 흑창을 설치하여 빈민을 구제하였다(918, 고려 태조 원년). 오답 해설> ② 양현고를 두어 장학 기금을 마련한 왕은 예종이다(1119, 예종 14). ③ 노비안검법을 시행하여 재정을 확충한 왕은 광종이다(956, 광 종 7). ④ 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한 왕은 성종이다(983, 성종 2). ⑤ 전시과 제도를 (처음) 마련하여 관리에게 토지를 지급한 왕은 경종이다(976, 경종 원년, 시정 전시과).

 

12 – 고려 시대의 문화유산

정답> ③

'우리 연구회에서는 고려 시대 문화유산에 대한 학술 발표회를 마련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서울 원각사지 십층 석탑이 건조된 것은 조선 세조 13년인 1467 년의 일이다(원각사는 현 서울 탑골 공원 자리에 세조 11년인 1465년에 세워짐). 오답 해설> ① 논산 개태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제압하고 세운 사 찰이다(936, 태조 19). 또 철확(鐵鑊)은 대형 철제솥이다. ② (석가모니불을 모신) 예산 수덕사 대웅전은 고려 충렬왕 34년 인 1308년에 지은 건물이다.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다. ④ 안동 이천동 마애 여래 입상은 고려 초기의 불상이다(11세기 경 제작 추정). 불두를 따라 제작하여 불신이 새겨진 암벽 위에 얹는 형식은 고려 시대에 널리 유행한 형식이다. ⑤ 청주 흥덕사에서 직지심체요절을 간행한 것은 고려 우왕 3년 인 1377년의 일이다

 

13 – 고려 시대의 경제 상황

정답> ⑤

위의 자료에 '화폐를 주조하는 법을 제정하여, 그것에 따라 주조 한 전(錢) 15,000관을 재추와 문무 양반 및 군인에게 나누어 주 어 화폐 사용의 시작점으로 삼고 이름을 해동통보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해동통보가 발행된 것은 고려 숙종 7년인 1102년의 일이다. 아래의 자료에는 '주현에 명령하여 미곡을 내어 술과 음식을 파 는 점포를 열고 백성에게 교역을 허락하여 전(錢)의 이로움을 알 게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고려 숙종 9년인 1104년의 일을 언급한 자료로, 고려 숙종이 화폐의 주조는 물론 유통에도 매우 적극적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 경시서의 관리들이 수도[개경]의 시전을 감독하기 시작한 것은 고 려 제7대 왕인 목종 대(재위 997-1009)로 추정된다(경시서 자체 는 그 이전에 설치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고려 제11대 왕인 문 종 대(재위 1046-1083)에 이르러 경시서의 직제가 확대되었다. 참고로 경시서는 조선 초에도 계속 존속되다가 세조 12년(1466) 에 관제를 개혁할 때 평시서(平市署)로 개칭되었다. 오답 해설> ① 모내기법이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은 조선 후기의 일이다. ② 초량 왜관을 통해 일본과 무역한 것 역시 조선 후기의 일이 다. 동래 상인인 내상이 왜관 개시를 통해 대일 무역에 종사하였 다. ③ 독점적 도매 상인인 도고(都賈)가 활동한 것 역시 조선 후기의 일이다. ④ 감자, 고구마 등의 (구황) 작물이 널리 재배된 것도 조선 후기 의 일이다.

 

14 – 최충헌의 봉사 10조

정답> ④

(가)에 '동북면병마사 간의대부 김보당이 동계(東界)에서 군대를 일으켜, 정중부와 이의방을 토벌하고 전왕(前王)을 복위시키려고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동북면지병마사 한언국이 장 순석 등에게 거제(巨濟)로 가서 전왕을 받들어 계림에 모시게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의종 복위 운동을 꾀한 김보당의 난이 일어난 것은 고려 명종 3년인 1173년의 일이다. (나)에는 '만적 등이 노비들을 불러 모아서 말하기를, 장군과 재 상에 어찌 타고난 씨가 있겠는가? 때가 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만적 등 100여 명이 체포되어 강에 던져졌 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고려 신종 원년인 1198년에 일어난 '만 적의 난'임을 알 수 있다. 최충헌이 (이의민을 축출하고 집권한 직후) 명종에게 봉사 10조 를 올려 시정 개혁을 건의한 것은 1196년(명종 26)의 일이다. 오답 해설> ① 웅천주 도독 김헌창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신라 헌덕왕 14년 인 822년의 일이다. 웅천주는 지금의 충남 공주 지역이다. ② 최우가 인사 행정 담당 기구로 정방을 설치한 것은 고려 고종 12년인 1225년의 일이다. ③ 이자겸과 척준경이 반란을 일으켜 궁궐을 불태운 것은 고려 인종 4년인 1126년의 일이다(이자겸의 난). ⑤ 김부식이 서경의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출정한 것은 고려 인종 13년인 1135년의 일이다(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15 – 조선 태종의 업적

정답> ③

위의 자료에 '왕은 우리나라에 서적이 대단히 적어서 유생들이 널리 볼 수 없는 것을 염려하여 주자소를 설치하고 구리로 글자 자형을 떠서 활자를 만드는 대로 인출(印出)하게 하였다'는 내용 이 나와 있다. 주자소가 설치된 것은 조선 태종 3년인 1403년의 일이다. 아래의 자료에는 '왕이 시경·서경··좌전의 고주본(古註本)을 자본 (字本)으로 삼아 이직 등에게 십만 자를 주조하게 하였는데, 이것 이 계미자이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계미자는 조선 태종 3년에 주자소에서 만든 동활자이다. 따라서 이를 통해 제시된 자료 속 왕은 조선의 제3대 왕인 태종(재위 1400-1418)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태종은 재위 원년인 1401년에 문하부 낭사를 분리하여 사 간원으로 독립시켰다. 오답 해설> ① 경국대전을 '완성'하여 법령을 정비한 왕은 조선 성종이다 (1476, 성종 7). 참고로 경국대전을 '반포'한 것은 성종 16년인 1485년이고,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한 것은 세조 7년인 1461년 이다. ② 청과 국경을 정하는 백두산정계비를 세운 왕은 조선 숙종이다 (1712, 숙종 38). ④ 신해통공을 실시하여 시전 상인의 특권을 축소한 왕은 조선 정조이다(1791, 정조 15). ⑤ 함길도 토착 세력이 일으킨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왕은 조선 세조이다(1467, 세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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