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 조선 책략 소개 이후의 사실
정답> ⑤
왼쪽 말풍선에는 '현재 조선에 가장 시급한 외교 사안이 무엇이 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와 있다. 이렇게 말한 사람으로 김 홍집(1842~1896)이 제시되어 있다. 이어 오른쪽 말풍선에는 '러 시아를 막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을 가까이 하고, 일본 과 관계를 공고히 하며, 미국과 연계하여 자강을 도모해야 한다' 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른바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이라는 외 교 정책(사실상 러시아 견제책)을 주장한 것으로, 황준헌 (1848~1905)이 말한 것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로써 제시된 자료 는 고종 17년인 1880년 5월(음력) 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김홍집이 당시 주일 청국 외교관[참찬]이었던 황준헌을 만나 나눈 대화임을 알 수 있다. 황준헌은 자신의 주장이 담긴 『조선책략』 을 김홍집에게 주었는데, 김홍집이 귀국 후 이를 고종에게 바쳤 다(1880.9, 고종이 조정의 신하들은 물론 널리 유림들에까지『조 선책략』을 읽어보게 하고 의견을 구함). ㄷ. 이만손 등이 (『조선책략』의 영향을 받아 미국을 포함한 서구 열강들과 수교하려는 개방 정책을 조선 조정이 채택하려는데 반 대하여 일종의 집단 척사 상소인) 영남만인소를 올린 것은 1881 년(고종 18) 2월의 일이다. ㄹ.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된 것은 1882년(고종 19) 5월의 일이다. 서구 열강과 맺은 최초의 조약이다.
오답 해설>
ㄱ. 운요호 사건이 일어난 것은 고종 12년인 1875년 9월의 일이 다. ㄴ. 전국에 척화비가 건립된 것은 고종 8년인 1871년 5월의 일이 다
32 – 거문도
정답> ③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라는 제목 하에 답사 장소가 제시되어 있 다. 첫 번째는 '영국군 묘지'로 러시아 견제를 구실로 무단 점령 한 영국군의 묘지'라는 소개글이 제시되어 있다. 1885년 4월 영 국군이 거문도(전남 여수시 삼산면에 있는 섬)를 불법 점령한 사 건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1887년 2월까지 주둔). 두 번 째는 '임병찬 순지비'로 '고종의 밀지를 받아 독립 의군부를 조직 한(1912.9) 독립운동가 임병찬(1851~1916)이 유배되어 순국한 것 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라는 소개글이 제시되어 있다. 임병찬은 1914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거문도에 유배된 바 1916년 5월 순국하였다. 참고로 임병찬이 스승으로 모신 인물이 바로 면암 최익현(1833~1906)이다.
33 – 갑오개혁(제1차)
정답> ⑤
왼쪽 말풍선에는 '얼마 전에 정부가 교정청을 폐지하고 군국기무 처를 설치하여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는 말이 나와 있다. (제 1차) 갑오개혁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1894.6~12). 오른쪽 말풍선에는 '은본위제 채택을 포함한 여러 안건을 처리했다고 들 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건양이라는 연호를 채택한 것은 을미개혁 때의 일이다 (1895.8~1896.2). 제1차 갑오개혁 때 채택한 연호는 '개국'이다 (청의 종주권 부인). 청의 연호를 더는 사용하지 않고 개국 기년 을 사용하게 되었다.
오답 해설>
① 과거제를 폐지한 것은 제1차 갑오개혁 때의 일이다. ② (고문과) 연좌제를 금지한 것 역시 제1차 갑오개혁 때의 일이 다. ③ 공사 노비법을 혁파한 것 역시 제1차 갑오개혁 때의 일이다. ④ 과부의 재가를 허용한 것도 제1차 갑오개혁 때의 일이다. 참 고로 봉건적 악습 중 하나인 '조혼(早婚)*'도 폐지하였다. *조혼: 어린 나이에 일찍 결혼하는 것
34 – 동학 농민 운동
정답> ③
'떨어진 녹두꽃'이라는 제목 하에 '동학 농민 운동의 전개 과정을 시간 순으로 살펴보면서 그들이 추구한 사회의 모습을 알아본다' 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장면별 구성 내용에서 #3(장면 3)으 로 '동학 농민군이 정부와 전주 화약을 체결하다'가 나와 있고, 그 사이에 #4로 '(가)'가 나와 있으며, #5로 '동학 농민군의 지도 자, 전봉준이 체포되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동학 농민군과 정부가 전주 화약을 체결한 것은 1894년 5월 8일 이고, 동학 농민군의 지도자, 전봉준이 체포된 것은 동년(1894년) 12월 2일의 일이다. (동학 농민군이) 우금치에서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것은 1894년 11월 9일의 일이다(우금치 전 투). 이후 6~7일간 혈전을 벌였으나 동학 농민군은 끝내 화력의 열세를 만회하지 못하고 대패하였다.
오답 해설>
① 해월 최시형(1827~1898)이 동학의 2대 교주가 된 것은 1863 년의 일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철종 14년인 1863년에 수운 최제 우(1824~1864)로부터 동학을 포교하라는 명을 받고 영덕, 영해 등 경상도 각지를 순회하여 많은 신도를 얻었고, 동년 7월 북도 중주인(北道中主人)으로 임명되어 8월 14일 도통을 승계받았다 (사실 이와 관련해 많은 학문적 논의가 있음). ②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 농민군이) 백산에서 집결하여 4대 강령 을 발표한 것은 1894년 3월 25일~26일의 일이다(고부 백산 대 회). 백산은 현재 전북 부안군 백산면 용계리이다. ④ 황룡촌 전투에서 장태를 이용하여 (중앙 경군을 상대로) 승리 한 것은 1894년 4월 23일의 일이다. 그 전인 동년 4월 6일~7일 에 황토현(황토재) 전투에서 전라도 감영군을 격퇴한 바 있다. ⑤ 서울에서 교조 신원을 위한 복합 상소를 올린 것은 1893년 2 월의 일이다(서울 복합 상소)
35 – 단발령 전후의 역사적 사실들
정답> ⑤
(가)에는 '왕이 경복궁을 나오니 이범진, 이윤용 등이 러시아 공 사관으로 옮기게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김홍집 등이 군중에게 잡혀 살해되자 유길준, 장박 등은 도주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고종이 1896년 2월 11일(양력) 러시아 공사 웨베르 (베베르)와 친미파(이범진, 이완용, 이윤용 등)의 도움을 받아 러 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 파천'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에는 '오늘 대군주 폐하께서 내리신 조칙에 "짐이 신민에 앞 서 머리카락을 자르니, 너희들은 짐의 뜻을 잘 본받아 만국과 나 란히 서는 대업을 이루라"라고 한 내용이 나와 있다.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단발령과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단발령이 시행된 것은 음력 1895년 11월 17일로, 양력으로는 1896년 1월 1일에 해당한다(음력 1895년 11월 15일 공포). (다)에는 '광화문을 통해 들어온 일본 병사들이 건청궁으로 침입 하여 왕후를 수색하고, 마침내 왕후를 찾아내어 시해하였다'는 내 용이 나와 있다. 1895년 10월 8일(양력)(음력으로는 1895년 8월 20일)에 있었던 '을미사변'(명성 황후 시해 사건)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제시된 자료들을 일어난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나)- (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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