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한능검47회

한능검 47회 16~20_심화_정답 및 해설

bluecolor 2021. 1. 2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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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원 간섭기의 사실

정답> ②

'화면의 그림은 천산대렵도에 그려진 변발과 호복을 한 무사'라는 말이 나와 있다. 이어 '이러한 머리 모양과 복장이 지배층 사이에 서 유행한 시기에 있었던 사실에 대해 말해' 보자는 내용이 나와 있다. 천산대렵도는 고려 제31대 왕인 공민왕(재위 1351-1374)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변발과 호복'은 몽골의 풍습이자 고 유 의상으로, 이는 곧 몽골풍이 유행한 원 간섭기와 관련된 것임 을 알 수 있다[원 간섭기는 원종의 환도령으로 강화도에서 개경 으로 환도한 1270년부터 시작(개경 환도), 이후 공민왕의 반원 정책으로 원 간섭에서 탈피]. 도병마사가 도평의사사로 개편된 것은 원 간섭 이후의 일이다 (1279, 충렬왕 5). 또 권문세족 역시 원 간섭기의 지배 세력을 칭 하는 명칭이다.

오답 해설>

① 윤관이 동북 9성을 쌓은 것은 고려 예종 2년인 1107년의 일 이다. ③ 정중부 등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차지한 것은 고려 의종 24 년인 1170년의 일이다(무신 정변). ④ 초조대장경을 만들어 국난 극복을 기원한 것은 고려 초기의 일이다. 현종 2년인 1011년에 발원하여 선종 4년인 1087년에 최 종 완성되었다. 고려 최초의 대장경으로 대구 부인사에 보관하였 으나 몽골의 제2차 침입 때(1232) 소실되었다. ⑤ 만적을 비롯한 노비들이 신분 해방을 도모한 것은 고려 신종 원년인 1198년의 일이다.

 

17 – 조선 세종 시기의 모습

정답> ⑤

왼쪽 말풍선에는 '장영실 님, 국왕의 명으로 이번에 시각을 스스 로 알려주는 자격루를 제작하셨는데, 작동 원리를 설명해' 달라는 말이 나와 있다. 오른쪽 말풍선에는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지 렛대의 힘으로 굴러간 쇠구슬이 인형을 작동시켜 종, 북, 징을 울 리게 하고 팻말로 시각을 알리도록 고안하였다'는 말이 나와 있 다. 자격루는 자동으로 시보를 알려주는 장치가 되어 있는 물시 계로, 세종 16년인 1434년에 장영실(1390년경~?), 김조, 이천 등이 만들었다. 따라서 제시된 '국왕'은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 (재위 1418-1450)임을 알 수 있다. (화약과 화기의 제조를 맡아보던 임시 관청이었던) 화통도감이 설 치된 것은 고려 우왕 3년인 1377년의 일이다. 창왕 원년인 1389 년에 조준의 상소에 의해 폐지되었다.

오답 해설>

① 집현전이 실질적인 학문 연구 기관으로 바뀐 것은 세종 2년 (1420)의 일이다. ② 농사직설이 편찬된 것은 세종 11년인 1429년의 일이다. ③ 칠정산 내·외편이 편찬된 것은 세종 26년인 1444년의 일이다. ④ 주자소에서 갑인자가 주조된 것은 세종 16년인 1434년의 일 이다.

 

18 – 조선의 건국 과정

정답> ②

'조선의 건국 과정'이라는 제목 하에 (가)에는 '이성계가 위화도 에서 회군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고려 우왕 14년인 1388년의 일이다. (나)에는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고 경복궁을 건설하였다'는 내용 이 나와 있다. 한양으로 천도한 1394년(태조 3)의 일이다. (다)에는 '조준 등의 건의로 과전법을 제정하여 토지 제도를 개혁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고려 공양왕 3년인 1391년의 일이 다. 따라서 일어난 순서대로 나열하면, '(가)-(다)-(나)'가 된다.

 

19 – 조선 성종 대의 사실(경국대전)

정답> ②

맨왼쪽 말풍선에는 '직전(職田)의 폐단으로 이번에 새로운 제도를 마련했다'는 말이 나와 있다. 가운데 말풍선에는 '수조권을 가진 관리가 농민에게 전세를 직접 거두면서 과다하게 수취하는 것이 문제였다'는 말이 나와 있다. 맨오른쪽 말풍선에는 '그래서 소재 지의 관청에서 그 해 생산량을 조사하여 전세를 거둔 후 지급하 기로 했다'는 말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제도'는 성종 원년인 1470년에 시행된 관수 관급제임을 알 수 있다. 성종 16년인 1485년 (세조 때부터 착수한)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이 완성되었다.

오답 해설>

① 현량과를 통해 신진 사림이 등용된 것은 조선 중종 때의 일이 다(1519, 중종 14). 정암 조광조(1481~1519)의 건의로 시행되었 다. ③ 영창 대군(1606~1614)이 사사된 것은 광해군 6년인 1614년의 일이고, 인목 대비가 (서궁에) 유폐된 것은 광해군 5년인 1613년 의 일이다. 대북파가 영창 대군 및 반대파 세력을 제거하기 위하 여 일으킨 계축옥사로 인해 발생한 일이다(1613, 광해군 5). 그런 데 영창 대군은 사사(賜死)*된 것이 아니라 (기록에 따라 이견이 있으나) 『광해군일기』에 의하면, 강화부사 정항이 굶겨 죽였거나 온돌을 뜨겁게 달구어 증살(蒸殺)한 것으로 되어 있다. *사사: 죽일 죄인을 대우하여 임금이 독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 하는 것 ④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왕자의 난이 발생한 것은 두 차례이다. 태조 7년인 1398년 8월에 일어난 것이 첫 번째이고(제1차 왕자 의 난, 방원의 난, 무인정사의 난, 또는 정도전의 난이라고 함), 1400년 1월에 일어난 것이 두 번째이다(제2차 왕자의 난, 방간의 난, 또는 박포의 난이라고 함). ⑤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한 탕평비가 건립된 것은 영조 18 년인 1742년의 일이다.

 

20 – 향교

정답> ⑤

'조선 시대에 유학 교육을 위해 지방에 설립된 교육 기관이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대부분 관아 가까운 곳에 있었으며, 대 성전 중심의 제사 공간과 명륜당 중심의 강학 공간으로 이루어졌 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마지막으로 '입학 정원은 고을의 위상과 크기에 따라 달랐으며, 학생들은 소학과 사서오경을 주로 배웠다' 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자료 속 교육 기관은 향 교임을 알 수 있다. 중앙에서 (향교에) 교수와 훈도를 파견하기도 하였다.

오답 해설>

① 좌수와 별감을 두고 운영한 기관은 유향소(향청)이다. ② 지방의 사림 세력이 주로 설립한 교육 기관은 서원이다. ③ 소과에 합격해야 입학 자격이 주어진 교육 기관은 성균관이 다. ④ 흥선 대원군에 의해 대부분 철폐된 교육 기관은 서원이다 (1864, 고종 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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