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 발해(대외 교통로)
정답> ⑤
'(가)의 무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라는 제목이 나와 있다. '속일본 기에 '(가)의 왕 대무예가 고인의 등을 보내어 국서와 선물을 보 냈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기록된 내용으 로 '고인의, 덕주, 사나루 등 24명에게 서신을 가지고 가도록 하였고, 아울러 담비 가죽 300장을 정중히 보내니 때때로 소식 을 보내 우의를 두텁게 하고자 한다'가 나와 있다. 발해는 거란도, 영주도 등을 통해 주변 국가와 교류하였다. 발해 에는 5개의 주요 대외 교통로가 있었는데, 당과는 조공도·영주도 가, 거란과는 거란도가, 일본과는 일본도가, 신라와는 신라도가 있었다.
오답 해설>
①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한 국가는 백제이다[6세기 초 무 령왕 대(재위 501-523)]. ② 교육 기관으로 태학과 경당을 둔 국가는 고구려이다. 태학이 설립된 것은 소수림왕 때이며(372, 소수림왕 2), 지방 교육 기관으로 경당이 세워진 것은 장수왕 때 의 일(427, 장수왕 15)이다. ③ 골품에 따라 관등 승진에 제한이 있었던 국가는 신라이다(법 흥왕 때 골품제 정비). ④ 화백 회의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한 국가는 신라이다.
07 – 나당 동맹 체결
정답> ②
(가)에서 '백제가 대야성을 함락하자 김춘추의 딸 고타소랑이 남 편 김품석을 따라 죽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김춘추가 이에 한을 품고 고구려에 군사를 청하여 백제에 그 원한을 갚고 자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백제의 의자왕이 대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것은 642년의 일이다. (나)에서 '김유신 등이 황산 벌판으로 진군하자 백제의 장군 계백 이 군사를 거느리고 먼저 험한 곳을 차지하여 세 군데에 진영을 설치하고 기다렸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김유신 등은 군사 를 세 길로 나누어 네 번을 싸웠으나 전세는 불리하고 병사들은 힘이 다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계백의 황산벌 전투를 가리 키는 것으로 660년 7월의 일이다. 신라가 당[태종]과 군사 동맹을 체결한 것은 648년(진덕 여왕 2) 의 일이다(나당 동맹).
오답 해설>
① 안승(?~?)이 보덕국의 왕으로 임명된 것은 674년(문무왕 14) 의 일이다. ③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대승을 거둔 것은 612년(고구려 영 양왕 23)의 일이다(살수 대첩, 중국 수 양제의 군사를 크게 물리 쳤다). ④ 신라군이 기벌포에서 적군(당군)을 격파한 것은 676년 11월의 일이다. ⑤ 복신(?~663)과 도침(?~661)이 부여풍(?~?, 의자왕의 5번째 왕 자)을 왕으로 추대한 것은 661년 9월의 일이다(백제 부흥 운동).
08 – 신라의 사정부
정답> ④
'지도와 같은 지방 행정 구역을 마련한 국가의 통치 제도에 대해 말해' 보자는 내용이 나와 있다. 제시된 지도를 살펴보면, 중원 경, 서원경, 남원경 등 5소경과 한주, 삭주, 명주 등 9주가 보인 다. 따라서 제시된 지도 속 지방 행정 구역은 9주 5소경으로 통 일 신라의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관리 감찰을 위해 사정부를 둔 것은 신라이다. 태종 무열왕 6년 인 659년의 일이다. 『삼국사기』에는 진흥왕 5년인 544년에 사정 부의 경(卿)을 임명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백관을 감 찰하는 기능을 가진 관서가 이때부터 있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즉 감찰 업무의 중요성이 커져 659년에 사정부로 격상됨, 동시에 최고 책임자를 '영(令)'으로 상향 조정).
오답 해설>
① 중앙군을 2군 6위로 조직한 국가는 고려이다(고려 성종 때 완 성). ② 지방관으로 안찰사를 파견한 국가도 역시 고려이다. 참고로 안찰사는 지방에 상주한 것이 아니라 지방을 순시하고 감찰하는 임시직이다. ③ 중앙 관제를 3성 6부로 정비한 국가는 발해이다. ⑤ 유학 교육 기관으로 주자감을 설치한 국가 역시 발해이다. 참 고로 신라의 사정부와 같은 감찰 기능을 담당한 발해의 (감찰) 기 구는 중정대이다
09 – 화쟁국사 원효
정답> ④
'(가)는 설총(655~?)을 낳은 이후 속인의 옷으로 바꾸어 입고 스 스로 소성거사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우연히 광 대들이 갖고 놀던 큰 박을 얻었는데 그 모양을 따라서 도구로 만들어 화엄경의 구절에서 이름을 따와 '무애(無㝵)‘라고 하고, 노래를 지어 세상에 퍼뜨렸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가) 인물'은 통일 신라의 화쟁국사 원효(617~686)임 을 알 수 있다. 원효가 지은 저술 중에 금강삼매경론이 있다(대승기신론소, 십문 화쟁론, 화엄경소 등 다수).
오답 해설>
① 부석사를 창건한 인물은 원묘국사 의상(625~702)이다(677, 신 라 문무왕 16). ② (강진 만덕사에서 법화 신앙을 중심으로) 백련결사를 주도한 인물은 고려의 원묘국사 요세(1163~1245)이다. ③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인물은 혜초(704~787)이다(727, 신라 성 덕왕 26). ⑤ 신편제종교장총록을 편찬한 인물은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 (1055~1101)이다(1090년대).
10 – 후백제
정답> ②
'우리 박물관에서는 전주 동고산성 발굴 특별 전시회를 개최한다' 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동고산성에서는 전주성(全州城)명 수 막새 등 견훤이 세운 (가)와 관련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는 내용 이 나와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회를 통해 후당, 오월과 교 류한 (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가) 국가'는 견훤(867~936)이 세운 후백제임을 알 수 있다. 견훤은 927년에 벌어졌던 고려와의 공산(지금의 대구 팔공산 일 대) 전투에서 고려군에 대승을 거두었다[반면 3년 후인 930년에 벌어졌던 고창(지금의 안동) 전투에서는 고려군에 패배].
오답 해설>
① 광평성(국정 최고 기관) 등의 정치 기구를 둔 국가는 궁예 (?~918)가 세운 후고구려이다. ③ 인안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국가는 발해이다(발해 무 왕 대). ④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 무역을 전개한 국가는 (통일) 신라이 다[828(흥덕왕 3)~851(문성왕 13)]. ⑤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고 (송악에서) 철원으로 천도한 국가는 궁예의 후고구려이다(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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