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 성호 이익
정답> ④
'이 책(『성호사설』)은 (가)이 평소 학문을 연구하여 기록한 글과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것을 정리한 백과전서류의 저서이다'는 내 용이 나와 있다. 이어 '천지문·만물문·인사문·경사문·시문문 등 5 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인사문에는 노비제, 과거제, 벌열(閥閱) 등을 나라를 해치는 6가지 좀벌레로 규정하여 비판하 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 (가)'는 중농학파(경세치용학파) 실학자인 성호 이익(1681~1763) 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여기서 '벌열'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나 라에 공로가 많고 벼슬 경력이 많은 것, 또는 그런 집안'을 뜻하 는데 쉽게 말해 '세도가', '권세가 있는 양반' 정도를 가리키는 것 으로 이해하면 된다. 성호 이익은 「곽우록」에서 토지 매매를 제한하는 한전론을 제시 하였다.
오답 해설>
① 북경에 다녀온 후 연행록*을 남긴 인물은 다수이나, 실학자 중에서 대표적인 두 인물로 담헌 홍대용(1731~1783)과 연암 박지 원(1737~1805)을 들 수 있다(각 '을병연행록'/'열하일기'). *연행록: 청에 다녀온 사신이나 수행원이 남긴 사행 기록(使行記錄). ② 양명학을 연구하여 강화학파를 형성한 인물은 하곡 정제두 (1649~1736)이다. ③ 북한산비가 진흥왕 순수비임을 고증한 인물은 추사 김정희 (1786~1856)이다(1816, 순조 16). ⑤ 북학의를 저술하여 절약보다 소비를 권장한 인물은 초정 박제 가(1750~1805)이다(1778, 정조 2).
27 – 인왕제색도(겸재 정선)
정답> ②
'조선 후기 회화전'이라는 제목 하에 왼쪽 말풍선에는 '이 그림은 겸재 (가)가 한양 근교의 경치를 그린 경교명승첩 중 한 작품이다 '는 말이 나와 있다. 이어 오른쪽 말풍선에는 '그는 우리나라의 산천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진경 산수화의 대표적인 화가로 금강 전도를 비롯한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는 말이 나와 있다. 이를 통 해 제시된 자료에서 말하는 '(가)'는 겸재 정선(1676~1759)임을 알 수 있다. 제시된 선지 중에서 ②가 '금강전도'와 함께 정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인왕제색도'이다(1751년작, 황혼에 접어든 일흔 여섯의 나이에 완성). 참고로 자료 속 그림의 명칭은 '광진'*이다 (1740~1741년작). *광진: 서울 광진구 광장동 아차산 일대의 모습을 그린 작품
오답 해설>
① 단원 김홍도(1745~1806?)의 총석정이다(1795년작, 을묘년화 첩). ③ 표암 강세황(1713~1791)의 영통동구도이다(1757년경, 송도기 행첩 중의 한 점). 서양화 기법인 원근법과 명암법이 반영되었다. ④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이다(1844년작). ⑤ 안견(?~?)의 몽유도원도이다(1447년작).
28 – 세도 정치기의 사실
정답> ①
'이 불상은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이다'는 내용이 나 와 있다. 이어 '이 불상 안에 있는 비기(秘記)가 세상에 나오는 날 나라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마 지막으로 '이러한 예언 사상이 안동 김씨 등 왕실의 외척을 비 롯한 소수의 특정 가문이 비변사를 중심으로 권력을 독점한 시 기에 널리 퍼졌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시기 '는 19세기 전반의 '세도 정치 시기'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을사사화가 발생한 것은 명종 즉위년인 1545년의 일이다.
오답 해설>
② 홍경래(1871~1812)가 (평안북도에서) 난을 일으킨 것은 순조 11년인 1811년의 일이다. ③ (삼정의 폐단을 고치기 위하여 임시로) 삼정이정청이 설치된 것은 철종 13년인 1862년의 일이다(진주 농민 봉기 시 안핵사로 파견되었던 박규수의 건의). ④ 최제우(1824~1864)가 동학을 창시한 것은 철종 11년인 1860 년의 일이다. ⑤ 이양선이 나타나 통상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부터의 일이다(기록상 이양선이 출몰하기 시작한 것은 18세 기 영조 시기부터지만,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통상을 요구하면서 조선 연해를 찾은 이양선이 급격하게 증가).
29 – 병인양요(병인박해)
정답> ⑤
'프랑스에서 의궤 모사본 발견'이라는 제목 하에 '프랑스에서 1900년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의궤 모사본이 발견되었 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가)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한 외규 장각 의궤 중 '헌종대왕국장도감의궤'와 '효현왕후국장도감의궤' 를 프랑스인이 베껴 그린 것으로 보이는 모사본을 발견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가)'는 고종 3년인 1866년 10월에 프랑스군의 침략으로 발생한 병인양요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의궤'란 조선 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에 큰 행사가 있을 때 후세에 참고할 수 있도록 일체의 관련 사실을 그림과 문자로 정 리한 책을 가리킨다. 병인양요가 발생한 주된 병인으로는 동년 2월에 (프랑스 국적의) 천주교 선교사와 수많은 신자들이 처형된 것을 들 수 있다(병인 박해*, 1866). *사실 병인박해는 해를 넘어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었 다.
오답 해설>
① 고종이 국외 중립을 선언한 것은 러시아와 일본 간의 대립이 격화되어 전쟁 발발 직전에 이르렀던 1904년 1월 23일의 일이다 (동년 2월 8일 러일 전쟁 발발). ② 함경도 관찰사(조병식)가 방곡령을 선포한 것은 고종 26년인 1889년의 일이다. ③ 오페르트가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 한 것은 1868년(고종 5) 5 월의 일이다. ④ 위안스카이[원세개]가 이끄는 군대가 조선에 상륙한 것은 임오 군란이 발생하였던 1882년 6월의 일이다.
30 – 사창제 실시
정답> ①
(가)에는 '왕이 창덕궁 인정전에서 즉위하였는데, 그때 나이가 12 살이어서 [신정]익황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 다. 이어 '친아버지인 흥선군을 높여 대원군으로 삼아 모든 정사 에 참여하게 하고 신하의 예와는 달리 대우하였다'는 내용이 나 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왕'은 조선의 제26대 왕인 고종(재위 1863-1907)임을 알 수 있다. 고종의 친아버지인 흥선 대원군 (1820~1898)이 이때 집권하여 이후 각종 개혁 정책을 펼치게 되 었다. 참고로 [신정]익황후*, 이른바 '조대비'는 1866년 2월에 수 렴청정을 거두어[철렴] 이후부터 고종의 친정이 시작되었다. *[신정]익황후: 순조의 세자인 익종의 왕비(1808~1890)이자 헌종의 어 머니이다. (나)에는 '최익현이 상소를 올려 대원군의 잘못을 탄핵하기를, 만 약 그 자리가 아닌데도 국정에 관여하는 자는 단지 그 지위와 자 리의 녹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한' 내용이 나와 있다. 이 어 '대원군이 분노하여 양주 직곡으로 물러나자 권력이 모두 (왕 비인) 민씨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자료는 흥선 대원군이 최익현의 탄핵 상소를 계기로 정계 에서 강제 은퇴한 사실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1873.11, 진정한 고종의 친정 체제로 전환). 따라서 이는 곧 흥선 대원군 집권 시기에 있었던 사실을 묻는 문 제이다. (환곡의 폐단을 시정하고자 흥선 대원군이) 사창제를 실 시한 것은 고종 4년인 1867년의 일이다. 기존의 환곡제를 개선해 마을 단위로 운영하는 사창제를 실시해 농민의 부담을 줄여 주고 자 한 것이다(1873년 11월 대원군의 하야와 함께 유명무실화됨).
오답 해설>
② 속대전이 편찬된 것은 영조 22년인 1746년의 일이다. ③ 장용영이 설치된 것은 정조 17년인 1793년의 일이다. 본래 정 조 9년인 1785년에 장용위라는 국왕 호위의 전담 부대를 창설하 였고, 1793년에 이르러 그 규모를 더욱 확대시켜 하나의 군영으 로 발전하였다. 크게 내영과 외영으로 나누어졌으며, 내영은 한성 도성을 중심으로, 외영은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④ 계해약조가 체결된 것은 세종 25년인 1443년의 일이다. ⑤ 백두산정계비가 건립된 것은 숙종 38년인 1712년의 일이다.
'한능검 > 한능검47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능검 47회 36~40_심화_정답 및 해설 (0) | 2021.01.27 |
---|---|
한능검 47회 31~35_심화_정답 및 해설 (0) | 2021.01.27 |
한능검 47회 21~25_심화_정답 및 해설 (0) | 2021.01.27 |
한능검 47회 16~20_심화_정답 및 해설 (0) | 2021.01.27 |
한능검 47회 11~15_심화_정답 및 해설 (1) | 2021.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