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 관찰사
정답> ④
'이 그림은 평양에 새로 부임한 (가)을/를 환영하는 모습을 묘
사한 부벽루연회도이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가)은/는
감사 또는 방백이라고도 불리었는데, 대개 종2품 이상의 고위
관리가 임명되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
(가)'는 조선 시대에 각 도에 파견되어 지방 통치의 책임을 맡
았던 최고의 지방 장관인 '관찰사'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관찰사는 관내 군현의 수령을 감독하고 근무 성정을 평가하였
다.
오답 해설>
① 간관으로서 간쟁과 봉박을 담당한 이들은 사간원 소속 관리
들이다.
② 6조 직계제의 실시로 권한이 약화된 이들은 3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포함한 의정부 소속 관리들이다.
③ 호장, 기관, 장교, 통인 등으로 분류된 이들은 향리들이다.
⑤ 출신지의 경재소를 관장하고 유향소 품관을 감독한 이들은
중앙의 고위 관리들이다.
22 – 천주교 박해 사건
정답> ①
(가)에 '한영규가 아뢰기를, 서양의 간특한 설이 윤리와 강상을
없애고 어지럽히니 어찌 진산의 권상연, 윤지충 같은 자가 또
있겠습니까? 제사를 폐하고 위패를 불태웠으며, 조문을 거절하
고 그 부모의 시신을 내버렸으니 그 죄가 매우 큽니다라고 하
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최초의 천주교 탄압 사건
인 '진산 사건'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1791, 정조 15). 전라도
진산(珍山)의 두 선비 권상연(1750~1791), 윤지충
(1759~1791)이 제시된 대로 부모의 제사를 거부하고 위패를
불태워 발생한 사건으로, '신해박해'라고도 부른다.
(나)에는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아! 통분스럽습니다. 이가환,
이승훈, 정약용의 죄가 무거우니 이를 어찌 다 처벌할 수 있겠
습니까? 사학(邪學)이란 것은 반드시 나라에 흉악한 화를 가져
오고야 말 것입니다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
해 제시된 자료는 조선 순조 원년인 1801년에 발생한 신유박해
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승훈(1756~1801)은 최초의
천주교 영세자(세례 교인, 세례명 베드로)이다.
(다)에는 '의금부에서, 죄인 남종삼은 명백한 근거도 없이, 러시
아에 변란이 있을 것이고 프랑스와 조약을 맺을 계책이 있다면
서 사람들을 현혹하였습니다. 감히 나라를 팔아먹고자 몰래 외
적을 끌어들이려 하였으니, 그 죄는 만 번을 죽여도 모자랍니
다. 죄인이 자백하였습니다라고 아뢰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배경지식이 좀 필요한 사료로, 천주교 순교자 남종삼
(1817~1866)(세례명 요한)과 관련된 천주교 박해 사건은 병인
박해이다(1866, 고종 3).
이상을 일어난 순서대로 나열하면, '(가)-(나)-(다)'가 된다.
23 – 조선 인조의 정책
정답> ④
'호패법 재실시 발표'라는 제목 아래 '금일, 왕이 호패법을 다시
시행하라고 명령하였다. 이는 문란해진 군적을 정비하고 이괄의
난 이후 심상치 않은 백성들의 동태를 점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호패법은 반정(反正) 직후부
터 논의되어 왔으나, 새로 군역에 편입될 백성들의 반발을 우려
하여 지금까지 시행이 미루어져 왔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
를 통해 제시된 '왕'은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조선의 제16대 왕
인 인조(재위 1623-1649)임을 알 수 있다. 호패법은 태종 13
년인 1413년에 처음 시행되었으며, 백성들의 호응이 좋지 않아
숙종 초까지 5차례나 중단되었다. 인종 때 호패법 재실시 교지
가 내려진 것은 1626년의 일이다(인조 4).
전세를 1결당 4~6두로 고정하는 영정법이 제정된 것은 조선
인조 13년인 1635년의 일이다.
오답 해설>
① 공신에게 공로와 인품에 따라 역분전이 지급된 것은 고려
태조 23년인 940년의 일이다.
②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고자 삼정이정청이 설치된 것은 조선
철종 13년인 1862년의 일이다.
③ 시전 상인의 특권을 축소하는 신해통공이 단행된 것은 조선
정조 15년인 1791년의 일이다.
⑤ 1년에 2필씩 걷던 군포를 1필로 줄이는 균역법이 시행된 것
은 조선 영조 26년인 1750년의 일이다.
24 – 농사직설
정답> ③
'한국사 과제 안내문'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에 제시된 조선의
농업 서적 중 하나를 선택하여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내용이 나
와 있다. '구황촬요, 금양잡록, 농사직설, 산림경제, 임원경제지'
가 제시되어 있다. 참고로 구황촬요는 흉년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책으로, 일종의 구황서(救荒書)이다(1554, 명종 9).
정초, 변효문 등이 (왕명을 받아)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종
합하여 편찬한 농업 서적은 농사직설이다(1429, 세종 11). 관
찬(官撰)으로 간행되었다.
오답 해설>
① 목화 재배와 양잠 등 중국 화북 지방의 농업을 소개한 농업
서적은 농상집요이다. 이 책은 고려 때 이암(1297~1364)이 원
으로부터 수입한 책이다(1372, 고려 공민왕 21).
② 인삼, 고추 등의 상품 작물 재배법과 원예 기술을 수록한 농
업 서적은 산림경제이다(1715년경, 숙종 41). 유암 홍만선
(1643~1715)의 저술로 간행되지는 못하였고, 서유구의 임원경
제지에 영향을 주었다.
④ 농촌 생활을 위한 백과사전으로 풍석 서유구(1764~1845)가
저술한 농업 서적은 임원경제지이다(1827, 순조 27).
⑤ 사숙재 강희맹(1424~1483)이 손수 농사를 지은 경험과 견
문을 종합하여 서술한 농업 서적은 금양잡록이다(1492, 성종
23). 금양이라는 모범 농장을 예로 들어 농부의 경험담을 기록
하였다. 구체적으로는 강희맹이 공직에서 은퇴한 후 경기도 금
양현(지금의 경기도 시흥시·광명시와 서울특별시 금천구 지역)
에 묘막을 짓고 손수 농사를 지으면서 그곳 농부들과의 대화와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지었다(1475~1483년 사이 저술)
25 – 서계 박세당
정답> ⑤
맨왼쪽 말풍선에 '색경을 편찬한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는
말이 나와 있다. 가운데 말풍선에는 '노론에 의해 사문난적으로
몰려 당시 학계에서 배척당했다'는 말이 나와 있다. 색경을 편
찬하고(1676, 숙종 2), 노론에 의해 사문난적으로 몰린 인물은
바로 서계 박세당(1629~1703)이다.
박세당은 소론으로, 유학 경전을 주자와 달리 해석한 사변록을
저술하였다. 참고로 노론에 의해 사문난적으로 몰린 또다른 인
물로 남인인 백호 윤휴(1617~1680)가 있다.
오답 해설>
① 청으로부터 시헌력 도입을 건의한 인물은 잠곡 김육
(1580~1658)이다(1653, 효종 4).
②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설계한 인물은 다산 정약용
(1762~1836)이다(1789, 정조 13).
③ 무오사화의 발단이 된 조의제문을 작성한 인물은 점필재 김
종직(1431~1492)이다(1457, 세조 3).
④ 천체의 운행과 위치를 측정하는 혼천의를 제작한 인물은 장
영실(1390년경?~?)이다(1433, 세종 15). 이듬해인 1434년에
는 자격루[물시계]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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