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 (금관)가야
정답> ⑤
'문화재청이 김해 대성동과 양동리 고분에서 출토된 목걸이 3점에 대한 보물 지정을 예고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이 유물은 김수로왕이 건국했다고 전해지는 (가)의 수준 높은 공예 기술을 보여준다. 또한 출토지가 명확하고 보존 상태가 온전하여 학술 및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가) 나라'는 (금관)가야임을 알 수 있다. 가야는 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과 왜 등에 수출하였다.
오답 해설>
① 골품에 따라 관등 승진에 제한이 있었던 나라는 신라이다.
② 만장일치제로 운영된 화백 회의가 있었던 나라 역시 신라이다.
③ 여러 가(加)들이 별도로 사출도를 주관한 나라는 초기 국가, 부여이다.
④ 박, 석, 김의 3성이 교대로 왕위를 계승한 나라는 신라이다.
07 – 백제 성왕의 업적
정답> ⑤
'이것은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석조 사리감이다. 이 사리감에 새겨진 글을 통해 능산리 절터가 관산성에서 전사한 이 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이 왕'은 백제의 제26대 왕인 성왕(재위 523-554)임을 알 수 있다. 성왕은 재위 29년인 551년에 신라의 진흥왕과 연합하여 한강 하류 지역을 되찾았다.
오답 해설>
① 익산에 미륵사를 창건한 왕은 백제의 제30대 왕인 무왕(재위 600-641)이다(639, 무왕 40).
② 동진으로부터 불교를 수용한 왕은 백제의 제15대 왕인 침류왕(재위 384-385)이다(384, 침류왕 원년).
③ 윤충(?~?)을 보내 대야성을 함락하게 한 왕은 백제의 제31대 왕인 의자왕)재위 641-660)이다(642, 의자왕 2).
④ 고흥(?~?)에게 서기를 편찬하게 한 왕은 백제의 제13대 왕인 근초고왕(재위 346-375)이다(375, 근초고왕 30).
08 – 발해
정답> ②
'(가), 남북국 시대를 열다'는 제목 아래, '<1부> 동모산에 도읍하고 나라를 세우다', '<2부> 당의 등주를 공격하고 요서에
서 격돌하다', '<3부> 일본에 국서를 보내어 고려 국왕이라 칭하다'가 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가) 국가'는 발해임을 알 수 있다. 발해의 중앙 관제는 3성 6부로(문왕 때), 정당성의 대내상이 국 정을 총괄하였다.
오답 해설>
① 9서당 10정의 군사 조직을 갖춘 국가는 통일 신라이다(687, 신문왕 7).
③ 지방관을 감찰하기 위해 외사정을 파견한 것은 신라 문무왕 13년인 673년의 일이다.
④ 위화부 등 13부를 두어 행정 업무를 분담한 국가는 통일 신라이다.
⑤ 마진이라는 국호와 무태라는 연호를 사용한 국가는 후고구려이다(904).
09 – 견훤
정답> ②
'(가)은/는 상주 가은현 사람이다. ······ [왕의] 총애를 받던 측근들이 정권을 마음대로 휘둘러 기강이 문란해졌다. 기근까지
겹쳐 백성들이 떠돌아다니고, 여러 도적들이 봉기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이에 (가)이/가 몰래 [왕위를] 넘겨다보는 마음을 갖고 ······ 드디어 무진주를 습격하여 스스로 왕이 되었으나, 아직 감히 공공연하게 왕을 칭하지는 못하였다. ······ 서쪽으로 순행하여 완산주에 이르니 그 백성들이 환영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상주 가은현 사람'이라는 점, '무진주(지금의 광주)'와 '완산주(지금의 전주)'라는 부분에서 제시된 '(가) 인물'은 900년에 후백제를 세운 견훤(867~936)임을 짐작할 수 있다.
ㄱ. 후백제는 건국 후 남중국의 후당, 오월에 사신을 파견하였다. 옳은 설명이다.
ㄴ. 광평성을 비롯한 각종 정치 기구를 마련한 인물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918)이다(904). 틀린 설명이다.
ㄷ. 신라의 금성을 습격하여 (신라의 제55대 왕인) 경애왕(재위 924-927)을 죽게 한 인물은 견훤이다(927). 옳은 설명이다.
ㄹ. 정계와 계백료서를 지어 관리의 규범을 제시한 인물은 고려의 태조 왕건이다(936, 태조 19). 틀린 설명이다. 따라서 <보기>에서 견훤에 대한 옳은 설명은, 'ㄱ과 ㄷ'이다.
10 – 고려 성종(시무 28조)
정답> ⑤
'내 몸은 비록 궁궐에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백성에게 있노라. 지방 수령들의 눈과 귀를 빌어 백성의 기대에 부합하고자 한다' 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이에 우서(虞書)의 12목 제도를 본 받아 시행할 터이니, 주나라가 8백 년간 지속되었듯이 우리의 국운도 길이 이어질 것이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우서의 12목 제도를 본받아 시행'한다는 부분에서 제시된 '왕'은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절도사)를 파견한 고려의 제6대 왕, 성종(재위 981-997)임을 알 수 있다(983, 성종 2).
고려 성종은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982, 성종 원년).
오답 해설>
① 천수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왕은 고려 태조(재위 918-943)이다(918, 고려 태조 원년).
② 관학을 진흥하고자 양현고를 설치한 왕은 고려의 제16대 왕인 예종(재위 1105-1122)이다(1119, 고려 예종 14).
③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여 관리를 채용한 왕은 신라의 제38대 왕인 원성왕(재위 785-798)이다(788, 신라 원성왕 4).
④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을 수복한 왕은 고려의 제 31대 왕인 공민왕(재위 1351-1374)이다(1356, 고려 공민왕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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