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원 간섭기의 관제 격하
정답> ③
'이곳은 김방경(1212~1300)의 묘입니다. 그는 개경 환도 이후 몽골의 간섭이 본격화된 이 시기에 여·몽 연합군의 고려군 도원수로 일본 원정에 참여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이 시기'는 원 간섭기를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원 간섭기는 일반적으로 1270년(원종 11)부터 1256년(공민왕5)까지로 본다(다른 주장 있음). 여·몽 연합군의 일본 원정은 두 차례 이루어졌는데 모두 실패하였다[1차 원정은 1274(원종 11), 2차 원정은 1281(충렬왕 7)].
원 간섭기에 고려의 관제가 격하되었는데,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은 첨의부로 개편되었다(2성 6부 → 1부 4사).
오답 해설>
① 삼수병으로 구성된 훈련도감이 창설된 것은 조선 선조 26년인 1593년의 일이다.
② 삼군부가 부활하여 군국 기무를 전담한 것은 조선 고종 2년인 1865년의 일이다.
④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초계문신제가 시행된 것은 조선 정조5년인 1781년의 일이다.
⑤ 국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비변사가 (임시로 처음) 설치된것은 조선 중종 5년인 1510년의 일이다(3포 왜란 발생 → 3포 폐쇄). 을묘왜변이 발생한 명종 10년인 1555년에 상설 기구화되었다.
12 – 삼국유사
정답> ①
'(가) 범어사본, 국보로 승격'이라는 제목 아래 '부산 범어사가소장한 (가) 권4~5가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되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이번에 국보로 승격된 범어사 소장본은 일연이 저술한 (가)의 현존 판각본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미 국보로 지정된 판각본의 누락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문화재정 관계자는 밝혔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가) 역사서'는 일연(1206~1289)이 1285년경(고려 충렬왕 11)* 편찬한 삼국유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 삼국유사 편찬 연도를 지금까지는 1281년(고려 충렬왕 7)로 표시하였으나, 불교 전문 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라 이제부터는 1285년경(고려 충렬왕 11)으로 표시함.
삼국유사에는 단군의 건국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오답 해설>
② 사초, 시정기 등을 바탕으로 편찬된 역사서는 '실록'이다.
③ 왕명에 의해 고승들의 전기를 기록한 역사서는 각훈(?~?)의해동고승전이다(1215, 고종 2).
④ 삼국유사는 본기, 열전 등 기전체 형식으로 서술된 것이 아니라 설화를 중심으로 한 기사본말체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⑤ (장편) 서사시[5언시] 형태로 고구려 계승 의식이 반영된역사서는 이규보의 동명왕편이다(1193, 고려 명종 23). 무신
집권기라는 사회 혼란 속에서 고려의 역사 전통을 고취할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13 – 고려 광종 대의 모습
정답> ④
왼쪽 말풍선에 '얼마 전 왕께서 친히 위봉루에 나가 과거 급제자를 발표하셨다'라는 말이 나와 있다. 이어 오른쪽 말풍선에는 '한림학사 쌍기가 이번에 처음 치러진 과거의 지공거를 맡았다'는 말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왕'은 고려의 제4대 왕인광종(재위 949-975)임을 알 수 있다. 광종은 재위 7년인 956년에 노비안검법을 시행하였다.
오답 해설>
① 녹과전이 시행된 것은 고려 원종 12년인 1271년의 일이다.
녹과전은 경기 8현에 한정하여 수조권을 지급한 토지이다.
② (일종의 독서당인) 만권당이 설치된 것은 고려 충숙왕 원년인 1314년의 일이다. 상왕인 충선왕이 원의 연경에 세웠다.
③ 주전도감이 설치된 것은 고려 숙종 2년인 1097년의 일이다.
⑤ 금속 활자로 직지심체요절이 인출된 것은 고려 우왕 3년인 1377년의 일이다(충북 청주 교외의 흥덕사).
14 – 고려 시대의 불상
정답> ②
'불상으로 보는 불교 문화 사진전'이라는 제목 아래 '이 실에서는 ○○ 시대 불상의 사진을 전시합니다. ○○ 시대에는 대형철불이 유행하였으며,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처럼 거대한 불상이 조성되기도 하였습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선지 ②는 유명한 경주 석굴암 본존불이다. 신라 경덕왕 10년 (751) 불국사가 창건될 시기에 같이 조성되었다.
오답 해설>
① 광주 춘궁리 철불로 고려 초기의 불상이다. 이전까지 석불, 금동불이 주류를 이루다가 고려 초인 10세기 말부터 철불이 유행하였다.
③ 안동 이천동 마애여래 입상으로, 역시 고려 초기의 불상이다 (11세기경 제작 추정), 불두(佛頭)를 따라 제작하여 불신(佛身) 이 새겨진 암벽 위에 얹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④ 영주 부석사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이다. 신라 시대의 양식을계승하였으며, 흙으로 만들어졌다.
⑤ 하남 교산동 마애약사여래 좌상이다. 질병에서 모든 중생을 구제해 준다는 약사불을 형상화하였다. 역시 고려 초기의 불상이다(977, 고려 경종 2).
15 – 최충헌
정답> ④
한국사테이터베이스 사이트라는 제목 아래 '고려사절요'를 검색 하는 창이 제시되어 있다. 명종 26년(1196) 4월에 '이의민을 제거하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명종 26년 5월에 '봉사 10조를 지어 바치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신종 3년(1200) 12월에는 '도방을 설치하다'는 내용이, 희종 2년(1206) 3월에는 '진 강후로 책봉되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인물은 최씨 무신 정권기를 연 최충헌(1149~1219)임을 알 수 있
다. 최충헌은 고려 희종 5년인 1209년 교정도감을 설치하고, 스스로 교정별감이 되어 인사, 재정 등 국정 전반을 장악하였다. 최충헌은 집권 시 2명의 왕(명종과 신종)을 폐하고, 4명의 왕(신종과 희종, 강종과 고종)을 세우는 등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오답 해설>
① 서경에서 난을 일으키고 국호를 대위로 한 인물은 묘청 (?~1135)이다(1135, 고려 인종 13). 연호를 천개, 자신들의
군대를 천견충의군이라 하였다.
② 화약과 화포 제작을 위한 화통도감 설치를 건의한 인물은 최무선(1325~1395)이다(1377, 고려 우왕 3).
③ 삼별초를 이끌고 진도로 이동하여 대몽 항쟁을 펼친 인물은 배중손(?~1271)이다(1170, 고려 원종 11).
⑤ 전민변정도감의 책임자로 임명되어 권문세족을 견제한 인물은 신돈(?~1371)이다(1366, 고려 공민왕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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