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한능검45회

한능검 45회 심화_11~15_정답 및 해설

bluecolor 2021. 1. 29.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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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고려 공민왕의 반원 정책

정답> ①

'왕이 원의 제도를 따라 변발과 호복을 하고 전상(殿上)에 앉아 있었는데 이연종이 말하기를, 변발과 호복은 선왕의 제도가 아니 니 본받지 마소서라고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왕이 기뻐하며 즉시 변발을 풀고, 이연종에게 옷과 이불을 하사하였다' 는 내용이 나와 있다. 배경지식이 좀 필요한 부분으로, 공민왕이 즉위를 위해 고려로 돌아와 원 풍습대로 변발과 호복을 한 채 전 상(임금이 앉는 자리, 또는 임금을 가리키기도 함)에 오르자 밀직 사 겸 감찰대부였던 이연복(?~?)이 이를 고칠 것을 간(諫)한 장면 이다. 고려 공민왕은 즉위 후 반원 개혁 정책을 펼쳤으며, 재위 5년인 1356년에는 대표적 친원 세력인 기철을 숙청하였다.

오답 해설>

② 김윤후가 처인성(지금의 용인)에서 몽골군을 물리친 것은 고려 고종 19년인 1232년의 일이다. ③ 정중부 등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것은 고려 의종 24 년인 1170년의 일이다(무신 정변). ④ 최충(984~1068)이 9재 학당을 세워 유학 교육을 실시한 것은 고려 문종 7년인 1053년의 일이다. ⑤ 만적을 비롯한 노비들이 신분 해방을 도모한 것은 고려 신종 원년인 1198년의 일이다(만적의 난).

 

12 – 상감 청자

정답> ④

'이 자기는 상감 기법으로 고려 시대에 제작한 문화유산이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상감은 겉 부분을 파낸 후에 그 자리에 백토나 흑토를 메우면서 무늬를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제작되었 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자료의 '이 자기'는 12 세기 중반 이후 유행하기 시작한 상감 청자임을 알 수 있다. 제시된 선지 중 ④가 고려의 독창적인 상감 기법으로 제작된 청 자 상감 운학문 매병이다(13세기 제작).

오답 해설>

① 조선 후기에 유행한 (순)백자 달항아리이다(18세기 전반 제 작). ② 상감 청자 이전인 고려 전기에 유행한 순수 청자로, 청자 참 외형 병이다(12세기 제작). ③ 조선 중·후기에 제작된 철화 백자로, 백자 철화 매죽문 항아리 [호]이다(16~17세기 제작). ⑤ 조선 전기에 제작된 청화 백자로, 백자 청화 매죽문 항아리 [호]이다(15세기 제작).

 

13 – 고려 시대의 주요 사건들

정답> ④

(가)에는 '최우는 정방(政房)을 자기 집에 설치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고려 고종 12년인 1225년의 일이다. (나)에는 '후주 출신 쌍기가 왕에게 과거 제도의 도입을 건의하였 고,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시험을 통해 진사를 선발하였다'는 내 용이 나와 있다. 고려 광종 9년인 958년의 일이다. 참고로 지공 거란 과거 시험관 또는 과거 고시관을 뜻한다. (다)에는 '신돈이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할 것을 청하고 스스로 판 사(判事)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고려 공민왕 15년인 1366년의 일이다. (라)에는 '정치도감의 관원이 남의 땅을 빼앗고 불법을 자행한 기 삼만을 잡아다가 죽게 한 일이 있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폐정 개혁 기관인 정치도감이 설치된 것은 충목왕 3년인 1347년의 일 이다. 부원파이자 권신인 기삼만이 곤장을 맞고 순군옥에 갇혔다 가 죽은 것도 이때의 일이다. 이상을 일어난 순서대로 나열하면, '(나)-(가)-(라)-(다)'가 된다

 

14 – 삼국사기

정답> ①

'왕명을 받들어 역사서 편찬을 주도한 인물이 왕에게 올린 진삼 국사표'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진삼국사표(進三國史表)에는 '삼가, 본기 28권, 연표 3권, 지(志) 9권, 열전 10권을 찬술하였 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자료에서 가리키는 역사서는 고려 인종 23년인 1145년에 김부식(1075~1151)이 올린 기전체 형식의 『삼국사기』임을 알 수 있다.

오답 해설>

② 조선 건국의 정통성을 강조한 역사서는 대표적으로 두 개가 있다. 첫째는 삼봉 정도전(1342~1398) 등에 의해 찬진된 『고려국 사』(1395, 태조 4) 이고, 둘째는 양촌 권근(1352~1409) 등이 편 찬한 『동국사략』(1403, 태종 3)이 그것이다. ③ 남북국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역사서는 영재 유득공 (1748~1809)이 쓴 『발해고』이다(1784, 정조 8). ④ 단군 조선에서 고려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사서는 대표적으로 두 개가 있다. 첫째는 사가정(호) 서거정(1420~1488) 등이 왕명을 받고 편찬한 『동국통감』(1485, 성종 16)이고, 둘째는 순암 안정복 (1712~1791)이 집필한 『동사강목』(1778, 정조 2)이 그것이다. ⑤ 불교사를 중심으로 고대의 민간 설화 등을 수록한 역사서는 보각국사 일연의 『삼국유사』이다(1281, 충렬왕 7). 삼국사기가 유 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기초해 집필되었다면 삼국유사는 불교적 신이사관에 입각해 쓰여졌다.

 

15 – 귀주 대첩

정답> ②

'거란군이 귀주를 지날 때, 강감찬 등이 동쪽 교외에서 맞아 싸웠 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거란군의 시신이 들판에 널렸고, 사로잡은 포로와 획득한 말, 낙타, 갑옷, 무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면서 살아서 돌아간 자가 겨우 수천 명이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자료에서 말하는 상황은 고려 현종 10년인 1019년에 벌어졌던 강감찬(948~1031)의 귀주 대첩임을 알 수 있다[거란의 제3차 침입(1018) 시]. 연표에서는 (나) 시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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