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 기사환국
정답> ⑤
'임금이 말하기를, 송시열이 산림(山林)의 영수로서 나라의 형세 가 험난한 때에 감히 원자의 명호를 정한 것이 너무 이르다고 하 였다는 이유로 삭탈관작하고 성문 밖으로 내쳐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송시열을 구하려는 자는 비록 대신이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왕이 말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 시된 상황은 세자 책봉 문제로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이 축출당한 기사환국 때임을 알 수 있다(1689, 숙종 15). 이 직후 인현 왕후 (1667~1701)가 폐위되고 희빈 장씨(1659~1701)가 왕비로 책봉되 었다(남인 집권).
오답 해설>
① 공신 책봉 문제로 이괄의 난이 일어난 것은 인조 2년인 1624 년이다. ②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발생한 것은 선조 22년인 1589년이다. ③ 허적과 윤휴 등 남인들이 대거 축출된 것은 경신환국 때의 일 이다(1680, 숙종 6). ④ 북인이 서인과 남인을 배제하고 권력을 장악한 것은 광해군 대(재위 1608-1623)의 일이다
27 – 조선 후기의 경제 상황
정답> ③
왼쪽의 말풍선에는 '유수원이 최근 (가)를 편찬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오른쪽 말풍선에는 '상공업의 진흥에 힘써야 한다는 점, 양반들도 농업과 상공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중상학파 실학자인 농 암 유수원(1694~1755)이 편찬한 책 (가)는 『우서』를 가리킨다. 유수원이 지방관으로 근무하던 40세 전후(1729년에서 1737년 사 이, 영조 5~13)에 편찬한 것으로 추정한다. 시장을 관리하기 위한 동시전이 설치된 것은 신라 지증왕 10년인 509년의 일이다.
오답 해설>
① 개시 무역과 후시 무역이 이루어진 것은 조선 후기에 해당한 다. ② 담배, 면화와 같은 상품 작물이 재배된 것 역시 조선 후기의 일이다. ④ 송상, 만상이 대청 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것 역시 조선 후기 이다. ⑤ 모내기법의 확대로 벼와 보리의 이모작이 확산된 것도 조선 후기이다
28 – 조선 정조의 업적
정답> ③
'이곳 만석거(萬石渠)는 이 왕이 수원 화성을 건립하면서 축조한 수리 시설 중 하나'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수갑(水閘) 및 수도(水道)를 만든 기술의 혁신성, 백성들의 식량 생산에 이바지 한 점, 풍경의 아름다움 등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세계 관개 시설물 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수 원 화성을 건립하였다는 부분을 통해 제시된 자료의 '이 왕'은 조 선 정조(재위 1776-1800)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수원 화성은 정조 18년인 1794년 2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2년 7개월 만에 완 공되었다(~1796.9). 또 만석거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 위치한 다. 정조는 재위 5년인 1781년에 초계문신제를 실시하여 문신들을 재교육하였다.
오답 해설>
① 집현전을 계승한 홍문관을 설치한 왕은 성종이다(1478, 성종 9). ② 군역의 부담을 줄이고자 균역법을 제정한 왕은 영조이다 (1750, 영조 26). ④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기 위해 탕평비를 건립한 왕 역시 영조 이다(1742, 영조 18). ⑤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해 삼정이정청을 설치한 왕은 철종 이다(1862, 철종 13)
29 – 조선 명종 대의 사실)을사사화)
정답> ④
왼쪽 말풍선에는 '양재역에 벽서가 붙었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물 으면서 대비께서 권력을 잡고 간신이 설치니 나라가 망한다는 내 용이라는' 말이 나와 있다. 오른쪽 말풍선에는 '대비마마와 이기, 윤원형 등이 가만있지 않을테니, 이로 인해 곧 조정에 큰 변고가 생길까 두렵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경기도 과천) 양재역에 벽 서가 붙었다는 소문'은 이른바 조선 명종 2년인 1547년에 일어난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소윤인 윤원형 일파가 대윤의 남은 세력 을 숙청하기 위해 조작한 사건이다. 참고로 말풍선의 대비마마는 당시 섭정을 하던 문정 왕후(1501~1565)를 가리키며, 이로 인해 다시 많은 사림이 화를 입었다(정미사화라고도 함). 2년 전인 명종 원년(1545)에 외척 간의 대립으로 을사사화가 발 생하였다.
오답 해설>
① 신유박해로 천주교인들이 처형된 것은 순조 원년인 1801년의 일이다. ②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게 된 것은 선조 8년인 1575년 의 일이다. ③ 홍경래 등이 봉기하여 정주성을 점령한 것은 순조 11년인 1811년의 일이다(홍경래의 난). ⑤ 자의 대비의 복상 문제로 예송이 전개된 것은 두 차례로 모두 현종 대의 일이다[각 1659(기해예송)/1674(갑인예송), 현종 즉위 년/현종 15].
30 – 세시 풍속, 유두
정답> ④
'액운 쫓고 더위 쫓는, (가)'라는 제목이 나와 있다. 이어 "(가)는 음력 6월 보름날로 이날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으면 나 쁜 기운이 날아가고,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합니다'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마지막으로 '탁족 놀이, 햇밀로 구슬 모양의 오색면 만들기, 수단 만들기'가 체험 프로그램으로 제시되어 있다. 음력 6월 보름날의 세시 풍속이라는 것에서 벌써 (가)는 '6월 유 두'임을 알 수 있다(6.15). 오색면은 유두면이라고도 하며, 수단 외 건단, 연병 등을 만들어 먹었다.
오답 해설>
① 동지는 음력 11월 중순에 행한 세시 풍속이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작은 설'로도 불렀다. 팥죽을 쑤어 먹었다. ② 한식은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양력으로 4월 5일 또 는 6일에 해당한다(4월 한식). ③ 칠석은 음력 7월 7일에 행한 세시 풍속이다(7월 칠석). ⑤ 삼짇날은 음력 3월 3일에 행한 세시 풍속이다(3월 삼짇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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