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능검/한능검45회

한능검 45회 심화_31~35_정답 및 해설

bluecolor 2021. 1. 2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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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 조일 수호 조규 부록과 조일 무역 규칙

정답> ⑤

(가)의 제7관에는 '일본국 인민은 본국의 현행 여러 화폐로 조선 국 인민이 소유한 물품과 교환할 수 있으며, 조선국 인민은 그 교환한 일본국의 여러 화폐로 일본국에서 생산한 여러 가지 상품 을 살 수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일본 화폐의 조선 내 유통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조일 수호 조규(강화도 조약)를 보완하기 위 해 동년(1876) 8월에 조인된 (조일 수호 조규) 부록이다(제7관). (나)의 제6칙에는 '조선국 항구에 거주하는 일본 인민은 양미와 잡곡을 수출, 수입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일본으로의 양곡의 무제한 유출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조일 수호 조규 부록 과 같은 날 체결된 조일 무역 규칙이다(제6칙). 일본과의 최초의 통상 장정으로, 일본 상인의 침투를 용이하게 하는 내용들로 채 워져 있다. 조일 수호 조규 부록과 조일 무역 규칙 두 조약은 모두 조일 수 호 조규(강화도 조약)의 후속 조치로 체결된 것이다(1876.8).

오답 해설>

① 임오군란을 계기로 체결된 조약으로는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과 제물포 조약이 있다(1882.8). ② 최혜국 대우를 처음으로 규정한 조약은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이다(1882.5, 제2조). ③ 조선책략의 영향으로 체결된 조약 역시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이다(청의 북양대신 이홍장의 주선). 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 된 김홍집(1842~1896)이 조선책략을 가져와 고종에게 바친 것은 1880년 9월의 일이다. ④ 거중 조정에 대한 내용이 포함된 것도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이다(제1조).

 

32 – 서울 진공 작전(13도 창의군)

정답> ②

'해산 결의 이틀 전 오전에 군부 대신과 하세가와 대장이 통감부 에 모여 현재 한국 군대를 해산하기로 결정한 결과로'라는 내용 이 나와 있다. 이어 '같은 날 오후 9시 40분에 총리와 법부 대신 이 황제에게 아뢴 후에 조칙을 반포하였더라'는 내용이 나와 있 다. 이를 통해 제시된 자료는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일제가 고종을 강제 퇴위 시킨 후 바로 시행된 대한 제국의 군대 해산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1907.7.31). 13도 창의군이 결성된 것은 1907년 12월이고, 서울 진공 작전이 전개된 것은 이듬해인 1908년 1월의 일이다.

오답 해설>

① 민영환, 조병세 등이 자결로써 항거한 것은 1905년 11월 17 일 을사늑약 직후의 일이다. ③ (재정 고문) 메가타가 주도한 화폐 정리 사업이 시작된 것은 1905년 7월의 일이다(~1909.12). ④ 고종이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한 것은 1907년 4월의 일이다. ⑤ 구식 군대가 난을 일으켜 일본 공사관을 습격한 것은 1882년 6월의 일이다(임오군란)

 

33 – 신민회

정답> ⑤

'(가)는 안창호, 양기탁, 이승훈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비밀 결사 단체'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국권을 회복한 뒤 공화 정체 의 국가를 수립하고자 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마지막으로 ' 실력 양성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무엇보다 국민을 새롭게 할 것을 주장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 된 '(가) 단체'는 1907년 4월에 결성된 신민회임을 알 수 있다. 신민회 내 강경파는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론을 주장하였는데, 1911년 봄 남만주(서간도) 삼원보에 독립운동 기지, 즉 경학사를 건설하였다.

오답 해설>

① 연통제를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은 단체는 대한민국 임시 정부이다(1919.7). ②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저지한 단체는 보안회이다 (1904.7). ③ 중추원 개편을 통해 의회 설립을 추진한 단체는 독립 협회이 다(1898.11). ④ 복벽주의(復辟主義)를 내세우며 의병 전쟁을 준비한 단체는 임병찬(1851~1916)이 고종의 밀지를 받아 조직한 (대한)독립 의 군부이다(1912.9). 참고로 복벽주의란 물러났던 군주를 다시 왕위 에 올리는 것으로 쉽게 말해 군주정(君主政)을 회복하려는 사상을 가리킨다. 왕정복고(王政復古)나 보황주의(保皇主義)를 뜻한다고 보면 된다.

 

34 – 갑신정변

정답> ①

'개화당,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는 제목하에 '근대적 개혁을 추구 하였던 (가)을 다큐멘터리 형식의 동영상으로 제작하여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본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우정총국 개국 축하 연 때 거사 장면'이 구성 내용 중 하나로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가) 사건'은 1884년 12월에 급진 개화파에 의해 발생한 갑신정변임을 알 수 있다. 갑신정변을 주도한 이들은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 필 등의 급진 개화파이다.

오답 해설>

② 김기수(1832~?)가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된 것은 강화도 조약 체결 직후인 1876년 4월의 일이다. ③ 구본신참(舊本新參)에 입각한 개혁이 추진된 것은 광무개혁 때의 일이다(1897~1904). ④ (조선 조정에 의해) 개화 정책을 총괄하는 통리기무아문이 설 치된 것은 1880년 12월의 일이다. ⑤ 개혁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 홍범 14조가 반포된 것은 1895년 1월의 일이다.

 

35 – 동학 농민 운동

정답> ③

'기록화로 보는 (가)'라는 제목이 나와 있다. 이어 '고부 관아 점 령'과 '황룡촌 전투', '삼례 집결', '우금치 전투' 순으로 기록화가 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자료의 '(가) 운동'은 1894년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임을 알 수 있다. 전봉준을 중심으로 봉기 한 동학 농민군이 고부 관아를 점령한 것은 1894년 1월 11일(음 력, 이하 동일)의 일이고(고부 농민 봉기), 황룡촌 전투에서 관군 (중앙 경군)을 물리친 것은 동년 4월 23일의 일이다. 또 2차 봉 기를 위해 동학 농민군이 삼례에 집결한 것은 동년 9월 4일의 일 이고, 우금치 전투가 벌어진 것은 11월 9일의 일이다. 동학 농민군은 전주성 점령 후 조선 조정과 전주 화약(동년 5월 8일)을 맺고 물러난 후 동년 7월 6일 합의를 통해 집강소를 중심 으로 폐정 개혁안을 실천하였다(1894.7~9, 전라도 일대).

오답 해설>

① 을사늑약에 반발하여 봉기한 운동은 을사의병이다(1905). ② 백낙신의 탐학이 발단이 되어 일어난 것은 진주 농민 봉기이 다(1862). 이후 곧 전국으로 봉기가 확산되었는데, 이를 임술 농 민 봉기라고 한다. ④ 유계춘(?~1862)을 중심으로 봉기하여 진주성을 점령한 것 역 시 진주 농민 봉기이다. ⑤ 홍의장군으로 불린 곽재우(1552~1617)가 의병장으로 활약한 것은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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