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 대구의 역사적 사실(국채 보상 운동)
정답> ④
'2·28 기념 중앙 공원'에서 '경상 감영 공원', '달성 공원 내 (수 운) 최제우(1824~1964) 동상', '민족 저항 시인 이상화 (1901~1943) 고택'이 답사 경로로 제시되어 있다. 제시된 시설 모두 대구에 위치한 것이다. 김광제(1866~1920), 서상돈(1850~1913) 등의 발의로 국채 보상 운동이 처음 일어난 곳 역시 대구이다(1907.2).
오답 해설>
① 인조가 피신하여 청군에 항전한 곳은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남 한산성이다(1636.12~1637.1). ② (독일의 유대계 상인인 에른스트) 오페르트(1832~1903)가 (흥 선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묘 도굴을 시도한 곳은 충남 예산 이다(1868.5, 정확하게는 충남 예산 덕산면 상가리). ③ 다산 정약용(1862~1836)이 유배 중에 경세유표를 저술한 곳은 전남 강진이다(1817, 순조 17). ⑤ 노동자 강주룡(1901~1931)이 을밀대 지붕에서 고공 농성을 벌 인 곳은 평양이다(1931.5).
17 – 완도(청해진)
정답> ②
남해의 주요 섬인 (가) 진도, (나) 완도, (다) 거문도, (라) 거제도, (마) 영도가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통일 신라 때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섬은 완도이다[828(흥덕 왕 3)~851(문성왕 13)].
오답 해설>
①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구실로 불법 점령한 섬은 (진도가 아 니라) 거문도이다(1885.4~1887.2). ③ 6·25 전쟁 때 포로 수용소가 설치된 섬은 (거문도가 아니라) 거제도이다(1951.2~1953.7) ④ 러시아가 저탄소 설치를 명분으로 조차를 요구한 섬은 (거제 도가 아니라) 영도[당시 이름 절영도]이다(1897.7). ⑤ 삼별초가 용장성을 쌓고 몽골에 대항한 섬은 (영도가 아니라) 진도이다(1270.6~1271.5).
18 – 고려 시대의 경제 모습
정답> ①
말풍선에 '일전에 나의 아우인 의천이 화폐를 사용하면 쌀 운반 의 수고를 덜고, 간교한 무리의 속임수를 막을 수 있으며, 녹봉 지급과 국가 재정 관리에 편리하다고 건의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이제 주전도감에서 화폐를 발행하도록 하라'는 내용 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말풍선의 내용은 고려 숙종 대(재위 1095-1105)에 단행된 화폐 발행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해동통보가 주조되어 유통된 것은 고려 숙종 7년인 1102년의 일 이다. 주전도감이 설치된 것은 숙종 2년인 1097년이며, 해동통보 외 삼한통보, 해동중보, 활구(은병)이 발행되었다. 참고로 말풍선 에 나오는 숙종의 동생 의천은 말 그대로 대각국사 의천 (1055~1101)이다.
오답 해설>
② 전환국에서 백동화가 발행된 것은 조선 고종 20년인 1883년 의 일이다. ③ 중국 화폐인 명도전, 반량전이 널리 사용된 것은 초기 철기 시대의 일이다(기원전 5세기 이후). ④ 상평통보가 발행되어 널리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 숙종 4 년(1678) 이후의 일이다. ⑤ 궁궐 중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흥선 대원군에 의해) 당백전 이 발행된 것은 조
19 – 고려 인종 대의 사실
정답> ⑤
'백관을 소집하여 금을 섬기는 문제에 대한 가부를 의논하게 하 니 모두 불가하다고 하였는데 유독 이자겸, 척준경만이 금이 정 치를 잘하고 병력도 강성하여 날로 강대해지고 있다는 등의 이 유로 사신을 보내 먼저 예를 갖추어 찾아가는 것이 옳다고 주 장'한 내용이 나와 있다. 금의 군신 관계 요구를 수용한 이자겸 의 굴욕 외교를 보여 주는 장면으로, 고려 인종 4년인 1126년 의 일이다. 묘청이 수도를 서경으로 옮길 것을 주장하면서 봉기한 것은 인종 13년인 1135년의 일이다(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 인종의 재위 기 간은 1122-1146).
오답 해설>
① 최충헌이 봉사 10조를 올린 것은 고려 명종 26년인 1196년의 일이다. ② (공주) 명학소의 망이·망소이가 봉기한 것은 고려 명종 6년인 1176년의 일이다. ③ 최무선의 건의로 (화약 및 화기의 제조를 담당하는) 화통도감 이 설치된 것은 고려 우왕 3년인 1377년의 일이다. ④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김치양을 제거한 것은 고려 목종 12년 인 1009년의 일이다. 거란 성종이 이를 빌미로 제2차 침입을 단 행하였다(1010, 현종 원년).
20 – 과전법
정답> ②
(가)에는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서 위화도에 머물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태조가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기를, 군사를 돌이 킬 것을 청했으나, 왕도 살피지 아니하고, 최영도 늙고 정신이 혼 몽하여 듣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를 통해 제시된 자료 는 고려 우왕 14년인 1388년 5월에 발생한 위화도 회군과 관련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나)에는 '[대소 신료들이] 왕위에 오를 것을 간절히 권하여, 태조 가 마지 못해 수창궁(개경 소재)으로 행차하였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어 '태조가 말에서 내려 걸어서 대전에 들어가 왕위에 올 랐는데, 어좌(御座)를 피하고 기둥 안에 서서 여러 신하들의 하례 를 받았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태조 이성계가 즉위한 1392년 7 월의 일임을 알 수 있다. 조준 등의 건의로 과전법을 제정한 것은 고려 공양왕 3년인 1391년의 일이다.
오답 해설>
①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한 것은 신라 신문왕 대의 일 이다(각 689/687). ③ 양지아문을 설치하여 양전 사업을 실시한 것은 대한 제국 때 의 일이다(1899~1904, 양지아문 설치는 1898년). ④ 공로와 인품에 따라 역분전을 차등 지급한 것은 고려 태조 23 년인 940년의 일이다. ⑤ 직전법을 실시하여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한 것은 조 선 세조 12년인 1466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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